봄날의 뱀
-최승호
봄날의 뱀은 징그럽지 않다. 징그럽기는커녕 오히려
측은함 속에서, 나는 그 기운없는 할머니 같은 뱀이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개구리들이 빨리 겨울잠
에서 뛰어나와야 저 핼쑥한 뱀도 기운을 차릴텐데.
하긴 뱀을 살리느냐 개구리를 살리느냐 하는 문제는
나에게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때로는 지게 작대
기로 뱀의 입 안에서 개구리가 뛰어나오게 하고,때
로는 개구리나 들쥐 삼키는 뱀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봄날의 뱀은 독이 바짝 올라 뱀비늘에서 윤이 나는
가을날 뱀들과 다르게, 풀이 죽어 스르르르 기어간다.
땅에서 배를 뗄 수 없는 한스러움의 무게로, 끝없이
먹어야 산다는 슬픔의 길이로, 봄날의 뱀은 혼자서
길 없는 돌밭 길을 스르르르 간다.
***
뱀은 별로 유쾌한 동물은 아니지만 최승호가 그리고 있는 이 뱀은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측은한, 할머니 같은 뱀..
오후 늦게 이마트에 가려고 동생네 차에 올랐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 바퀴를 휘 돌면서
간신히 자리를 잡아 주차를 시킨 후에 100원을 넣고
카트 하나를 밀고 다니는데 이리저리 사람들이 채였다.
카트에 걸리고, 사람들에게 부딪히고
먹는 코너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불황이라는데 여긴 그런 거 모르는 모양이다
계산대 앞에 가서도 줄은 여전히 길었다.
먹어야 산다는 슬픔의 길이는 거기도 있었다.
덩치가 큰 품목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두 먹을 거였다.
라면, 과자, 사탕, 젤리, 과일, 생선, 고기류, 술, 김, 계란 등등
하긴, 먹어야 산다는 슬픔의 길이가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위해 약간의 지겨움을 감수한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거리를 마련하면서
먹어야 산다는 게 참으로 지겨웠다.
아마도 내 얼굴이 지금쯤 기운빠진 봄날의 뱀을 닮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