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를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
“아참, 잊은 거 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를 보면서 아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더니 이불 속에서 부시럭거리며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뭘 하는 거야?”
“친구에게 편지 써요. 보지 마세요.”
“여자 친구?”
“네.”
“숙제구나?”
“네.”
“이름이 뭔데?”
“에이, 안 돼요.”
“아이, 이름만 보자.”
“그럼, 요기만 보세요.”
이러면서 맨 앞부분만 보여준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여자애 이름이 하나 달랑 있다.
“그애가 어디가 맘에 들어?”
“네, 예쁘구요, 무지 착해요. 공부도 잘 하구요.”
“그래? 그럼 명호는 그 친구한테 어떤 친구인 거 같니?”
“네, 저는요. 애들 준비물 안 가져올 때 잘 빌려줘요.”
나참..겨우 준비물 빌려주는 걸 자랑으로 삼다니..
하긴, 그래서 맘에 드는 아들이다.

내 서랍을 뒤져 제일 예쁜 편지지로 갖다 주었다.
“여기다 다시 써봐.”
“에이, 괜찮아요.”
“아냐, 여자들은 예쁜 거 좋아하거든.”
“그래요? 전 몰랐어요.”
그러면서 애써 도화지에 죽죽 줄 긋고 쓰던 편지를 옮겨 적는다.

이제 여자친구 얘기를 들먹이는 녀석을 보며 다 컸단 생각이 들었다.
친구란 그저 자기와 같이 놀아주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늘 생각한다.
평생을 함께 할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나와 함께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갑자기 보고 싶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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