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
-반칠환
공군3579부대 기동타격대 반 방위병, 무사히 기지 방어
야간 근무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어, 풍년 전기밥솥
열어 김치에 밤 한 술 혼자 뜨는데, TV채널 돌리니 '오월
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아-'. 이족으로 돌려도, 저
쪽으로 돌려도,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에이 재
미없어.' 'ON/OFF 스위치를 픽 눌러 끄는데,
'우리 막내둥이 오셨나?'
삽짝문 열고 칠순 노모가 들어오시네.
'마실 다녀오셔유?'
'아니다. 아침에 테리비를 보니까 오늘이 어린이날 아니냐.
우리 막내 뭘 슨물할까 하다가 막걸리 한 병 받아노는 질이
다.'
'야? 막거리를?'
어머니, 빙긋 웃으며 빈 스뎅 그릇을 내미신다.
***
어른들에게는 (그나마 자식을 가진 어른들에게만 해당하는) '어버이날'이 있지만,
그건 순전히 부모된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무거운 날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내밀고
잠깐 그 은혜에 눈시울 붉히는 척 하다가 은근슬쩍 넘어가는 날이다.
반면에, 애들은 참 좋겠다.
어린이날이라는 게 있어서 참 좋겠다.
어릴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넘어갔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아이들만이 갖는 '어린이날'이 부럽다.
앞뒤 분간 안 하고 남들이 받는 만큼 뭔가를 해달라고 조를 수도 있고,
모르는 누군가도 돌아보는 순간 어린이이기만 하다면 메가톤급 웃음을 기꺼이 날려주는,
온전히 내 것이 될 것 같은 가슴 벅찬 날.
그래도, 시인처럼 여전히 어린이로 취급되는 이런 경우도 종종 있으니
어른이 된 것도 그리 나쁘지 않구나.
아니지. 아직도 나를 어린애로 봐줄 어른이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올 어린이날에는 엄마한테 달려가 나도 선물 하나 달라고 졸라야겠다.
엄마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번지는 걸 보는 게 내게 선물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