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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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물고기여,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라일라는 어릴 때 아프리카에서 유괴되어 랄라 아스마에게 팔린다.
그녀를 돌보면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가 죽은 후 자밀라 아줌마의 여인숙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과 함께 자유를 맛보게 된다.
순전히 재미 삼아 시작한 도둑질에 손이 익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 때쯤,
랄라 아스마의 며느리와 아들에게 붙잡혀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겨우 도망쳐 파리로 향한다.
책을 읽고 음악에 빠지고 사람들을 자기에게 빠지게 하면서 라일라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라일라가 가진 매력은 돈 한 푼 없어도, 그날 잠자리가 걱정되어도

누구든 선뜻 나서서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가보다.
가진 것 없고 연고도 없는 그녀가 생활하는 게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외롭다거나 영혼에서 빠져버린 뭔가를 끊임없이 찾는 게 고통스러워 보일 뿐이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시몬느에게 음악을 배우고 우연히 알게 된 하킴의 할아버지로부터

죽은 손녀의 여권을 건네받는다. 불법 입국자로 매번 쫓겨 다니는 신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우연히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반한 르로이 씨와 음반 계약을 한 뒤 생활은 나아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황폐한 채로 지낸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장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을 하는데

라일라가 자기 부족이라고 믿는 힐랄 족, 초승달 부족의 여인을 만나고 어머니를 느끼고
사막 먼지에서 고향의 흙을 만지게 된다. 
라일라는 이제야 자유롭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름을 떨친 나의 조상 빌랄처럼,
노예였다가 예언자 마호메트가 속박에서 풀어주고 세상으로 내보낸 그 사람처럼,
드디어 나는 또 하나의 빌랄 족이 되어 부족의 시대에서 벗어나 사랑의 시대로 들어선다.


청소년기는 흔히 피가 끓는 시대라고 했던가.
얼마 전 읽었던 <개밥바라기별>에서처럼 그 시기 아이들은

어떤 나라든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열병을 앓는다.

열정대로 움직일 수 없는 데서 오는 아픔이 방황하게 만들고 줄

세워 놓은 곳에서 벗어나 자기 영혼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부딪히는 세상은 너무나 크다.

좌절하고 또 좌절하면서 점점 어른이 되어 가긴 하지만, 잃는 것도 만만치 않다. 
 라일라는 우리가 주류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지만 그녀가 찾는 것도 오직 한 가지,

자신이라는 동그라미에서 빠져나간 한 조각이다.

그 한 조각이 사랑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고, 한낱 이상일 수도 있다. 
 드디어 자유를 찾고 다시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켰지만,

라일라처럼 너무 먼 길을 돌아 황폐해지기 전에 다들 빠진 한 조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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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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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인 박기범이 쓴 이 글은 엄마와 '내'가 쓰는 일기다.

한 달 가량의 일을 담고 있는데 하루치 일기가 서너 장씩 넘어가기도 한다.

한글을 모르는 엄마가 한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나는 그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매일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집안 일을 아주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감정이나 사실 부분에서 조금의 과장도 보이지 않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엄마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있어 보통의 경우 숨기고 싶을 법한

부끄럽거나 아픈 이야기들도 전혀 빼놓지 않는 것에 놀랐다.

그야말로 일기에 충실한 글이다. 남에게 보여줄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그런 일기.

자기 성찰이 되는 그런 일기이다.

일기를 한동안 쓰지 않는 내게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더불어, 누구를 가르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국어에 관련한 경우는 더욱

이 사람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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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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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

 

이 시가 책의 머리를 장식하는 이유를 다 읽고 난 후에야 알았다.
그리움과 우울, 가난과 쓸쓸함, 다정함이 온통 짓누르고 있는 시인이 바로 함민복이라는 사실을....... 
온전한 집 한 칸 없이 가난한 어머니와 살아가는 시인이지만 그의 언어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가난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시인 때문에 읽는 동안 내가 더 불편했지만

그로 인해서 그를 더 사랑하게 됐다. 

요즘 들어 부쩍 엄마가 나이 드심을 깨닫게 된다. 매사에 짜증이 늘어 자식들에게 화를 그대로 내어 보이시는 엄마가 미워 한동안 뵙기도 꺼려했다가 나는 이글을 보고 울고 말았다.

집 떠나는 날 어머니는 염색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께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식들이 더 자주 찾아뵙지 않겠냐고 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시다가 선문답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지셨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 
 나는 단단히 맘먹었다. 이번 기회에 위장병도 고치고 심기일전하여 좋은 글도 많이 쓰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이곳 암자로 오기 위해 집을 떠나오던 날, 나는 밥 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차마 말씀하시지 않은 마음 한 자락을 읽었다.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까봐......”

그들이 어렸을 때 한없이 베풀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작은 일 하나에도 뾰로통하여 도무지 풀릴 줄 모르는 좁디좁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그랬고 다른 이들도 별 다르지 않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던 내게 일침을 가한 이 사람.

이 책은 산문집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시집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산문이 시처럼 읽히기는 또 처음이다.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읽듯 한 편 한 편을 정성들여 읽었다.

공들인 것보다 더 크게 내게 다가온 ‘살아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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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

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시월이다.


10월이라고 숫자로 썼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시월’이다.

뭔가 좀 더 아릿하고 쓸쓸한 느낌이 배인, 제대로 된 감각의 ‘시월’이라 마음에 든다.


어제는 상동에서 중동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작은 공원에 다다를 때쯤

지독한 매연과 어수선한 공기를 과감하게 뚫는 향기가 흘러 다녔다.

짧게 이발하고 바람이 흔드는 대로 사사사삭 낮은 포복을 하는 잔디들은

깔끔하긴 하였으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제 멋대로 잘라버린 사람들에게

싱싱한 풀냄새로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베인 아픔을 향기로 뿜어내는 저 풀들의 항의가 내게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베인 마음을 치유해주는 소중한 약이 되었다.

 

허전하고 빈 집 같은 시월이지만 이런 마음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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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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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미용실에 가야만 보게 되는 잡지들은

머리하는 동안 그 따분한 시간을 잊게 만드는 서비스인 셈인데

광고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 중 또 반은 온갖 연예계 소식이 난무한다.

더불어 자주 보게 되는 기사는 이름하여 '심리 테스트'

아무 생각 없이 yes 나 no를 따라 가다 보면

그럭저럭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을 반의 반 가량 읽었을 때 머리엔 비닐 캡을 둘러 쓰고 앉아

잡지에 나온 심리테스트를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지금부터 셋을 세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 둘, 셋!"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듯한 강렬한 인상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아지지 않았고

그게 거부감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 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는 일인데

작가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안 받는 것만이 행복한 일인 양 이야기한다.

여기 나오는 사례들 대부분이 나쁜 영향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별로 문제될 게 없긴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서로 간에 건강한 영향을 주고 받으니

이 책을 읽은 다음 나처럼

'내가 방금 했던 말이 저 사람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

하는 생각에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자기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는 일은

꽤 괜찮은 일이긴 하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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