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

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시월이다.


10월이라고 숫자로 썼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시월’이다.

뭔가 좀 더 아릿하고 쓸쓸한 느낌이 배인, 제대로 된 감각의 ‘시월’이라 마음에 든다.


어제는 상동에서 중동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작은 공원에 다다를 때쯤

지독한 매연과 어수선한 공기를 과감하게 뚫는 향기가 흘러 다녔다.

짧게 이발하고 바람이 흔드는 대로 사사사삭 낮은 포복을 하는 잔디들은

깔끔하긴 하였으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제 멋대로 잘라버린 사람들에게

싱싱한 풀냄새로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베인 아픔을 향기로 뿜어내는 저 풀들의 항의가 내게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베인 마음을 치유해주는 소중한 약이 되었다.

 

허전하고 빈 집 같은 시월이지만 이런 마음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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