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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평생 작품을 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역시 대단하다' 라는 명제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다른 작품을 섭렵한 후 이 작품을 읽었다면 감흥이 달랐을 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책으로 엔도 슈사쿠라는 걸출한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행운일 것이다.
이 <깊은 강> 과 <침묵> 두 소설은 작가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넣어갔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아끼던 두 책 중 하나를 이미 보았으니 그러므로 또 행운이다.
이제 막 아내를 암으로 잃은 이소베와 생활에서 아무런 활력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미쓰코,
동물과 식물을 대상으로 동화를 쓰는 누마다, 미얀마에서 전우가 버리지 않고 살려준 기구치는
모두 다른 필요에 의해 인도 여행에 참가하게 된다.
이소베는 환생할 테니 꼭 찾아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따라,
미스코는 학창시절 괴롭혀주었던 오쓰라는 친구를 찾아
누마다는 병상에서 대신 죽음을 가지고 가버린 구관조에게 보답하기 위해
기구치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의 인육을 먹고 괴로워하며 죽어간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은 결국 한 가지 진실에서 만난다
내가 생각한 건.......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꾸로 어떤 악행에도 구원의 씨앗이 깃들어있다.
무슨 일이건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그걸 칼로 베어 내듯 나누어선 안된다. 분별해선 안된다.
기구치가 하는 말이다.
인도인들이 환생의 강이라 부르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면서 친구를 추억하고 있는 이 남자를 통해
작가는 살면서 저지르게 되는 무수히 많은 일들로 괴로워하기 보다는
그걸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른 환생이란 다음 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생을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화장을 한 시체를 버리고, 그 물에 축복을 바라며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고,
그 물을 먹는 건 인도인들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 삶이야 말로 그렇지 아니한가.
잠시 덮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 바탕은 그대로인 채 사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단지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하는 일이 모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깊은 강.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모든 걸 가져갈 수 있는 강.
사제의 길을 걷지만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해 있다는 오쓰를 보면서 '하늘님'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서로 다른 종교로 나뉘고 종파로 또 나뉘어도 결국 하는 말씀들은 다 거기가 거기다.
꽤 종교적 색채가 짙긴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인간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 섬찟할 정도였다.
깊은 강에 몸을 담그고 정화하는 의식을 거친 듯, 여태까지 내가 행한 작은 惡들에서
善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물에 담근 것만큼 더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