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헨 자아를 찾아가는 빛
미야타 미쓰오 지음, 양현혜 옮김 / 사계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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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책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비평서답지 않게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지?' 하는 물음이 다시 남는다.

작가는 동화 속에 녹아 있는 기독교적 사상을 고찰하는데 심취했지만

그렇게도 읽을 수는 있겠구나 하는 끄덕임 뿐이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건

지나치게 교훈을 집어 넣으려고 노력하는 동화를 질색하는 이유와 같다.

 

우리는 일상에 매몰되는 안일한 졸음 사태와 무관심에서 탈출하여

늘 새롭게 길을 떠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동화는 신앙의 희망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화는 우리가 '선한 분에게 신비롭게 보호되어' 살고 있음을

비유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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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드 게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4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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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닉스버그답다.

내 예상을 깨뜨리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복동생 니키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브란웰은 입을 닫아버린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셈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아침에 읽은

<내 마음의 벽을 넘어>의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수영선수 김진호를 닮았다.

사람들과 소통을 위해 엄마는 무수한 노력 끝에 비장애인과도 어울릴 수 있는 진호를 만들어냈지만

마음을 닫아버린 브란웰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친구이자 화자인 코너 케인이다.

 

코너는 이복 누나인 마거릿의 도움을 받아 <잠수복과 나비>를 쓴 보비처럼 접근해가기로 한다.

단어를 쓴 카드를 보여주고 브란웰이 눈을 두 번 깜박이면 그것에 대해 조사하는 식이다.

주변인물들을 탐구해나가면서 코너는 브란웰이 알려주려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코너가 주도적으로 일을 끌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거릿 누나와 주변인물들이

코너를 존중하면서 도와주고 있다.

브란웰이나 코너가 가진 공통점은 아버지가 모두 대학에서 일한다는 것과

둘 다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재혼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화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추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게 좋았다.

 

열네살. 사춘기가 시작된 나이의 남자 아이들이 이성에게 갖는 호기심과

수치심, 자아존중감이 잘 나타나 있는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마음에 든 건 두 아이들이 말로 놀이하는 방법이다.

브란웰의 동양인 새 엄마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외할머니, 할아버지 태도를 보고

한 문장 짓기를 한 코너의 경우,

'그들이 동양인들을 기울어진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동양인들은 결코 '우리' 동양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하는 식이다.

이 부분들이 마음에 남는 건 브란웰처럼 나도 단어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독특하거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행복이다.

아이들도 이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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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홀러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5
샤론 크리치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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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비 홀러.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쉬는 듯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꾸지람도 화냄도 신경질도 없이 너그럽게 모든 걸 감싸주는 곳.

'어머니'라고 부를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곳이 바로 루비홀러다.

붉게 반짝이는 루비와 같이 아름다운 계곡.

그 속에 있는 오두막을 가리키는 말이자 이상향으로 읽힌다.

 

온갖 규칙으로 채워진 고아원을 견디지 못하고 말썽을 부려

입양되었다가 쫓겨오기를 거듭하는 쌍둥이 남매 플로리다와 댈리스.

루비 홀러에 사는 노부부 세어리와 틸러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쌍둥이를 찾는다.

살아오면서 받은 억압과 부당함에 비뚤어진 플로리다와

항상 밝은 면만 보고 좋게 생각하려는 댈러스는 노부부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존중하려고 애쓰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부부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루비 홀러 속에 완벽하게 동화가 된다.

세어리와 틸러 부부가 숨겨놓은 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아원원장 이야기는

<톰 소여의 모험>을 떠올리게 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걱정이라는 걸 해보지 않은 플로리다가

틸러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책에 빠진 초등학교 5학년부터

많은 집들을 전전하면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이 심장처럼 빛나는 루비 홀러 속에서

안정을 찾는 결말은 다소 뻔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있고 싶어할

세어리와 틸러 부부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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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네 집 문원아이 26
강정규 지음, 김재홍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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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코끝이 찡해 중간중간 쉴 수밖에 없는 책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쉽던가.

이 책에 들어 있는 7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한참을 가다 쉬고, 또 한참을 가다 또 쉬어야 했다.

맹장에 걸렸지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엄마가 괴로워하는 걸 보다 못한 큰형이

휴가를 나왔다가 그대로 업고 칠십 리 길을 걸어 수술을 허락받을 때,

된장국 속에서 나온 멸치 한 마리를 먹는다고 자존심 없다며 동생을 때릴 때 함께 울었고,

철로가 끊긴 줄로 모르고 달리던 기차를 마을 사람들이 세웠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곡마단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에게선 풋사랑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세대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구수하고 따뜻한 입담으로 별다른 거리감 없이 스며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단편집을 만난 기쁨으로도 한 번 더 쉬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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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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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작품을 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역시 대단하다' 라는 명제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다른 작품을 섭렵한 후 이 작품을 읽었다면 감흥이 달랐을 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책으로 엔도 슈사쿠라는 걸출한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행운일 것이다.

이 <깊은 강> 과 <침묵> 두 소설은 작가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넣어갔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아끼던 두 책 중 하나를 이미 보았으니 그러므로 또 행운이다.

 

이제 막 아내를 암으로 잃은 이소베와 생활에서 아무런 활력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미쓰코,

동물과 식물을 대상으로 동화를 쓰는 누마다, 미얀마에서 전우가 버리지 않고 살려준 기구치는

모두 다른 필요에 의해 인도 여행에 참가하게 된다.

이소베는 환생할 테니 꼭 찾아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따라,

미스코는 학창시절 괴롭혀주었던 오쓰라는 친구를 찾아

누마다는 병상에서 대신 죽음을 가지고 가버린 구관조에게 보답하기 위해

기구치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의 인육을 먹고 괴로워하며 죽어간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은 결국 한 가지 진실에서 만난다

 

내가 생각한 건.......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善惡不二)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꾸로 어떤 악행에도 구원의 씨앗이 깃들어있다.

무슨 일이건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그걸 칼로 베어 내듯 나누어선 안된다. 분별해선 안된다.

 

기구치가 하는 말이다.

인도인들이 환생의 강이라 부르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면서 친구를 추억하고 있는 이 남자를 통해

작가는 살면서 저지르게 되는 무수히 많은 일들로 괴로워하기 보다는

그걸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른 환생이란 다음 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생을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화장을 한 시체를 버리고, 그 물에 축복을 바라며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고,

그 물을 먹는 건 인도인들만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 삶이야 말로 그렇지 아니한가.

잠시 덮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 바탕은 그대로인 채 사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단지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하는 일이 모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깊은 강.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모든 걸 가져갈 수 있는 강.

 

사제의 길을 걷지만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해 있다는 오쓰를 보면서 '하늘님'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서로 다른 종교로 나뉘고 종파로 또 나뉘어도 결국 하는 말씀들은 다 거기가 거기다.

꽤 종교적 색채가 짙긴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인간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 섬찟할 정도였다.

깊은 강에 몸을 담그고 정화하는 의식을 거친 듯, 여태까지 내가 행한 작은 惡들에서

善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물에 담근 것만큼 더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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