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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드 게임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4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코닉스버그답다.
내 예상을 깨뜨리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복동생 니키를 떨어뜨려 다치게 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브란웰은 입을 닫아버린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셈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아침에 읽은
<내 마음의 벽을 넘어>의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수영선수 김진호를 닮았다.
사람들과 소통을 위해 엄마는 무수한 노력 끝에 비장애인과도 어울릴 수 있는 진호를 만들어냈지만
마음을 닫아버린 브란웰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친구이자 화자인 코너 케인이다.
코너는 이복 누나인 마거릿의 도움을 받아 <잠수복과 나비>를 쓴 보비처럼 접근해가기로 한다.
단어를 쓴 카드를 보여주고 브란웰이 눈을 두 번 깜박이면 그것에 대해 조사하는 식이다.
주변인물들을 탐구해나가면서 코너는 브란웰이 알려주려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코너가 주도적으로 일을 끌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거릿 누나와 주변인물들이
코너를 존중하면서 도와주고 있다.
브란웰이나 코너가 가진 공통점은 아버지가 모두 대학에서 일한다는 것과
둘 다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재혼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화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추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게 좋았다.
열네살. 사춘기가 시작된 나이의 남자 아이들이 이성에게 갖는 호기심과
수치심, 자아존중감이 잘 나타나 있는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마음에 든 건 두 아이들이 말로 놀이하는 방법이다.
브란웰의 동양인 새 엄마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외할머니, 할아버지 태도를 보고
한 문장 짓기를 한 코너의 경우,
'그들이 동양인들을 기울어진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동양인들은 결코 '우리' 동양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하는 식이다.
이 부분들이 마음에 남는 건 브란웰처럼 나도 단어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독특하거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행복이다.
아이들도 이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