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계절 범우문고 191
이시하라 신타로 지음, 고평국 옮김 / 범우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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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논하기 전에 작가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 참 마음에 안 든다.

시인 서정주의 작품은 인정하지만 그의 친일 행각을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작품이 전후 세대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청춘을 잘 그려낸 수작이라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지만'이다. 내 의견은 아니므로)

그가 했던 망언들, 

"일본의 난징 대학살 사건은 중국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들의 원성을 샀다고 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또 한 가지 도쿄 도지사에 당선되어 정치 활동을 한 점들이 모두 다 작품을 가리는 그늘이 된다.

작가의 이력만을 자꾸 들추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작품도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다.

<<태양의 계절>>에는 두 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권투에 집착한 다쓰야가 에이코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느끼지만

무절제한 생활과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몰라

결국 에이코를 잃어버리고야 만다는 <태양의 계절> ,

이제는 노병이라고 불리지만 아직도 축구에 빠져 지낸 기시마와 약삭빠르게

회사일에 집중해 승진을 한 야마기시, 둘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 야마기시를 선택했지만

축구에 광분해있는 기시마에게 다시 마음을 빼앗긴 요오코와 기시마의 아내 아키코가

끝까지 찾으려고 했던  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빼앗길 수 없는 것>

이렇게 울림이 적은 작품도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전후세대였다면 공감하는 바가 컸겠지만

시대도 문화도 다른 내가 좋은 작품이라고 추어주기엔 부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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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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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셀 수도 없으리.'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카불'에 대해 쓴 시의 일부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떠오를 테니까.'

이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했던 마지막 말.

스칼렛이 그녀의 태양을 농장인 타라에서 찾을 수 있었다면

라일라의 태양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에서 찾을 수 있다.

묘한 관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마리암, 사랑하는 아이들, 첫사랑인 타리크와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전쟁에 목숨을 바친 두 오빠, 로켓탄에 맞아 죽은 친구들,

카불의 재건을 위해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라일라가 가진 천 개의 태양이다.

태양은 하루종일 우리를 위해 빛나지는 않는다.

지구가 열심히 움직이는 덕분이긴 해도 감성적인 묘사를 하자면

태양은 아침에 떴다가 저녁에는 지고 또다른 아침에 떠오른다.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사라지고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있는 태양.

그러므로 태양은 희망이다.

 

작가의 첫 작품인 <연을 쫓는 아이>를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친구를 배신한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했던 어느 소년이 장성한 뒤

다시 조국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낯선 아프가니스탄을 생생하게 보여준 때문이었다면,

두 번째 작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부르카 뒤에서 눈만 내놓은 채 자신을 감춰야만 하는

여인들의 지독한 삶을 너무 가까이서 아프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다.

열넷, 열다섯 살에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학대받고 서른이 되기 전에 늙어버리는 그녀들은

조선시대 우리 여자들과 그리 다를 바 없어서 더욱 애처로운지도 모르겠다.

진리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도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그것,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런 지독한 삶조차 견딜 수 있게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여전히 전쟁 중인 그곳,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봐달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명분 없는 싸움에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가족이 죽는 고통을 줄 것인가.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니지만 국익이라는 기치 아래 다른 나라를 전쟁터로 만든

그들을 돕는 우리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 우리는 언제까지 단일민족이라는 웃기는 명제 아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천시하고 따돌릴 것인가.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얼굴빛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독한 고집들을 이제 그만 접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땅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듯 그들도 거기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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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헤아리며 카르페디엠 4
로이스 로리 지음, 서남희 옮김 / 양철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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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부터 역자후기까지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걸까?

본문 앞에 배치된 '역자의 말'에서 책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나 화가 났다.

영화 예고편도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는 내게 이건 완전 테러 수준이다.

이게 추리소설이라서 뒷부분에 나올 내용을 미리 알면 큰일이 나는 건 아니지만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이런 글은 뒷편이 실어주는 배려가 있어야지,

주인공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미리 알면서 그게 나오기만 기다린다면

결코 즐거운 책읽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걸 꾹 참고 본다면

<기억전달자>만큼 나를 사로잡은 책은 아니지만 독일 점령 아래 덴마크에 살던 유태인과

그들을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여 따뜻하게 감싸준 덴마크 사람들의 우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책이다.

다 읽고나면 자연스레 '진정한 용기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네가 만약 아무 것도 모르면 용감해지기가 한결 쉽지."

헨리크 삼촌이 안네마리에게 해준 말인데 그 상황에서는 물론 맞는 말이지만

용기 있는 행동은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할 때 다소 억지스런 느낌도 있다.

하려는 일이 내게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건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정치인과 문학인과 지식인들.

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옳다고 믿는 그대로 행동하는 건 결코 쉽지 않고

나도 그럴 용기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들을 애국자와 변절자로 분류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사람들을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 되는 시점이다.

요즘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이나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말할 줄 알았던 방송인들이 여기서 겹치는 건

그들 역시 안네마리네 가족처럼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가 가져다 준 결과를 우리는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진정한 용기가 나라를, 시대를 어떻게 바꿨는지 과거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의 큰 줄기를 바꿀 힘이 없는 개인이라고 해도 눈 감고 귀 막고 입 막은 채

나만 조용히 잘 살고 있으면 된다고 엎드려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중고생들이 아무곳에서나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해대고 또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어도

후환이 두려워 못 본 척 지나친 부끄러운 내가 보인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가진 어른들이 늘어날 때

이 땅에 있는 또다른 나치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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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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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아이'와 '백설공주'

어느 쪽이 정답일까?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가 나중에 나온 책이지만 어찌 하다 그 책을 먼저 읽어버려서 그런지

이 책은 좀더 서툰 느낌이 난다.

학생들을 앞에 두고 강의할 때 쓰려고 만든 초고 같은 느낌도 나고

두 책이 모두 '진짜 독일 동화는 이것이다'라는 명제 아래 쓴 책이라

색깔이 똑같으니 읽다가 하품난다.

물론 작가는 열심히 그림형제가 쓴 책들과 독일 구전 동화를 연구하고 그에 따라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조목조목 잘도 짚어주었지만

사실 약간 억지를 부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백설공주>를 열심히 연구해서 독특한 논문 하나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과 7이라는 숫자, 빨갛고 하얗고 검은 색이 독일에서 가지는 의미를 본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설공주>가 꼭 <새하얀 눈아이>로 번역되어야

글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작가의 주장에는 열렬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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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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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어공주>..

공주님들이 넘쳐난다.

예쁘고 상냥하고 마음씨 착한 공주와 잘생기고 착한 왕자가 만나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 이야기는 정말이지 많기도 하다.

돈 많은 여자 만나서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남자들 만큼이나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여자들도 많다.

작가는 신데렐라 컴플렉스 운운하며 여자들이 그런 욕망을 가지는 것이

마치 제대로 번역하지 않은 동화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화 속 이야기와 비슷한 실제 사건이 종종 일어날 뿐이지 ,

그런 동화를 어릴 때부터 신물 나게 읽어온 탓으로 여자들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작가도 상징을 이야기했지만 '백마 탄 왕자'는 상징일 뿐이다.

나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아'라고 했을 때 '어'라고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백마 탄 왕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언어를 번역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재투성이'를 신데렐라로,

결혼잔치를 무도회라고 고쳤다고 해서 이야기의 흐름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서양에서 '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일은 중요하다.

'옷'과 '결혼 잔치' '신발'이 가진 의미를 파악해보는 일도 필요하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동화, 아니 작가 주장대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각자 필요한 대로 해석을 한다.

의미부여를 할 수는 있지만 진짜 동화니 가짜 동화니 따질 필요가 있을까?

그냥 다른 사람의 독특한 견해를 들어본 것으로 끝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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