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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네 역사가 사라져도 좋아?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되는 거 알지?"
일기를 쓰지 않으려는 녀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협박이다.
사실 우리가 쓰는 일기처럼 역사란 게 딱히 심오할 것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도 후세들에게는 엄청난 사건들로 기록될 테지만
우리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은가!
산을 올라가는 동안에는 돌이 많다거나 이리저리 휜 나무들만 잔뜩 있다거나
청설모는 설치는데 정작 다람쥐는 볼 수 없다든지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는 게 고작이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탁 트인 정경을 바라보는 기쁨 외에도
산이 전체적으로 어찌 생겼는지 동서남북 쪽이 각각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 속에 파묻혀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흐른 뒤 사건과 사건들을 정리해보니까 어떻게 시작되었고 중간에 얌체처럼 끼어들어
이익을 본 인물은 누구이며 그래서 누가 감옥엘 갔고 욕을 보았으며
어떤 나라가 경제적인 부를 누렸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문학에서 역사를 읽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나마 요새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역사라고 하면 그저 열심히 외워서 4개 중에 하나의 정답을
고르느라 머리 아픈 시대에 살았던 우리들에게 재미있게 읽었던 책에서 새롭게 역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여주니 고맙고 좋은 일이다.
대학교에서 진행된 수업을 정리한 책이라 했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역사와 문학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면 외우는 기계에 불과했던 아이들 뇌도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을 것 같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사진 자료들도 각 장에 풍성하게 넣어두어 읽었던 책들은 읽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안 읽어본 책들은 보고 싶다는 열망을 피워올리기에 충분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이미 읽어보기 위해 빌려놓은 상태이고,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푸시킨의 <대위의 딸>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작가가 워낙 정리를 잘 해 놓은 탓에 여기 나오는 26권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책이 어렵다거나 읽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읽은 책들은 좀더 관심을 갖고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보물섬>을 얘기하는 도중에 나온 글을 보고 나는 무릎을 쳤다.
해적들이나 주인공이나 모두 로또와도 같은 보물찾기에 목숨 걸고 달려든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모험심 강한 영특한 소년과 해적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양편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국가'이다. 즉, 국가의 편에 서서 해외로 나가 폭력을 휘두르면
해군이나 사업가가 되고, 국가의 명령을 위반하면서 해외로 나가면 해적이 된다.
그밖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중략)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서 이를 잘 표현하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사로잡힌해적에게 왜 바다를 어지럽히면서 도둑질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해적은 오만불손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 각지에 출몰하는 당신과 다를 바 없소이다. 다만 나는 작은 배를 타니까 해적이라 불리는 것이고
당신은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으니 황제라 불릴 뿐이오."
세상에,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게 맞다니까!
역사를 배우는 의미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도 있다 배웠거늘
우리는 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