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논 책읽는 가족 38
서석영 지음, 이정규 그림 / 푸른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경미 다리에 붙었던 거머리를 보다가 농촌에 스타킹 보내기 운동이 생각났다.
지금이야 농약 때문에 논에 거머리가 많이 못 살아서 그런지,

스타킹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그런지 학교에서 스타킹 모으기 같은 건 하지 않는 모양이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서 땀이나 어려움 같은 걸 모르다 보니 어쩌다 한 번씩 보게 되는 농촌 풍경은

벼가 파랗게 흔들리면 그런 대로, 황금 들녁을 만들 때면 또 그대로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인식밖에 없는 내게

이 책은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여자 아이가 직접 농사를 짓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는 설정 자체는 약간 어색했지만

'세상이 이런 일이' 류의 프로그램에서 보면 트랙터를 모는 꼬마도 있고 정비를 하고 싶어하는 초등학생도 있으니

여자 아이가 농사를 짓는다는 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내가 더 이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부모에게 졸라 논 한 귀퉁이를 얻은 경미는 진짜 농사꾼이 되어 씨나락을 담그는 일부터 땅을 갈아엎는 일,

모내기와 모떼우기와 피뽑기, 팬 이삭을 먹으려는 참새와 씨름을 해가며 결국 가을에 한 가마니 소출을 낸다.

농약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행여나 아빠 논에서 뿌리는 농약이 자기 논으로 흘러들어올까봐 안달을 하다가

농약중독이 되어 병원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고 농약 대신 논에서 기르던 오리 한 마리가 다른 논으로 들어갔다가

농약 때문에 죽는 일이 생겼어도 경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쌀을 찧어 밥을 해먹던 날, 경미는 참았던 눈물, 감격스런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그리고 어려운 부모님 대신 농사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준 격이 되어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 경미를 자랑스러워하게 되는데 콧날이 시큰해져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장가를 못 간 덕중이 삼촌이 도시 처녀와 결혼했다가 실패하는 대목이나 농촌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석이 오빠가

거듭되는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 실패로 가세까지 기울게 되는 일, 마을에 해로운 염색공장 같은 것을 들이려고

뒤에서 조정하는 태형이 양반, 고아원 아이들이 들어온다고 반대시위에 앞장서는 연이 엄마 들을 보면서

씁쓸해지는 건 이게 지금 농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은 좀 낯설고 마음에 안 들어도 밥 한 톨을 하찮게 여기는 많은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를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쓴 전중환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진화심리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학자이다.

진화심리학은 다윈의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여 인지과학, 뇌과학, 컴퓨터 과학 등 첨단과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는 통섭형 과학이며 사회생물학자, 진화인류학자, 인지과학자, 심리학자들이 한데 모여 인간 본성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범학문적인 분야라고 한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기본 개념과 주요 연구들을 잘 정리한입문서가 아니며 유머, 소비, 도덕, 음악, 종교, 예술, 문화, 문학들을 진화 이론으로 들여다보는 책이니 묵직한 입문서를 원하시면 다른 책을 보라는 진심어린 작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진화심리학으로 들어가는 입문서로 볼 작정이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을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에 비유하여 톱이 판자 자르기, 드릴이 구멍 뚫기를 각각 잘 수행하게끔 특수화된 공구들이듯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하게 담긴 연장통이라고 설명한다.

<첫 번째 연장: 진화, 마음을 읽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기제들의 집합이다. 마음이 설계된 목적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은 심리학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 틀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예측들을 풍부히 생산하여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준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예술, 종교, 미학, 경영, 법학, 경제, 의학 등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저마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감안하면, 마음에 대한 진화적 탐구는 인간이 이룩한 학문 전체를 통합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두 번째 연장: 같은 행성, 다른 선택압>
남성과 여성에서 서로 다른 심리가 진화한 이유는 번식성공도(reproductive success:한 개체가 평생 동안 낳는 자식 수)가 분포하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는데 남성의 번식 성공도는 성관계 상대의 수에 비례하므로 남성은 여성보다 하룻밤 섹스를 더 갈망한다. 이런 남성의 처지는 여러 가지 위험한 일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심리를 진화시켰는데 이것은 남성들이 배우자를 유혹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험한 일을 추구하게끔 진화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여성의 번식 성공도는 자식을 얼마나 잘 키워냈느냐에 많이 의존하므로 여성은 아이를 돌보거나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꾸려 나가는 일에 남성보다 능하다. 그래서 여성들은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부터 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더 잘 읽어낸다. 남녀의 차이는 적지 않은 영역에서 발견되며 그 가운데 일부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심리기제가 남성과 여성에서 각기 다르게 장착되었기 때문에 나타난다. 


<네 번째 연장: 문화와 생물학적 진화>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문화의 생성, 전파, 그리고 소멸조차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된 인간의 심리 기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두뇌에 들어갈 수 있는 정보량은 제한되어 있다. 또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므로 어떤 모방자에 대해 다른 모방자보다 특별히 더 관심을 쏟는 심리기제, 어떤 모방자를 다른 모방자보다 더 오래도록 기억하는 심리기제, 어떤 모방자를 다른 모방자보다 타인들에게 더 잘 전파하는 심리기제 등이 우리 인간에게서 진화했을 것이다.

<다섯 번째 연장: 병원균, 집단주의, 그리고 부산갈매기>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외인혐오증과 자민족 중심주의를 낳았다. 자기 패거리 내의 사람들과 끈끈하게 뭉치면서 외부인을 배척하는 태도는 낯선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을 낮춰준다. 전통을 따르길 강조하면서 일탈을 용납 못하는 태도는 그 지역의 고유한 병원체들에 대한 방어로서 형성된 문화적 관습을 계속 유지하게끔 해준다.

<여섯 번째 연장: 다윈, 쇼핑을 나서다>
과시적 소비행태는 바람직한 배우자 자질을 광고하는 것으로 수공작이 암컷 앞에서 꼬리를 펼쳐 으스대는 행동과 다름없다. 채집활동과 관련된 쇼핑의 면면에서는 여자들이, 수렵활동에 관련된 쇼핑 행동에서는 남자들이 더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먼 옛날 수렵과 채집을 잘해내도록 설계되었던 심리기제들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연장: 웃으면 복이 왔다>
등도 따숩고 배도 부르니, 어서 심신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유쾌한 기분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다른 이들에게 보내는 사회적 신호가 바로 웃음이다. 창의적이고 머리회전이 뛰어난 남성만이 알짜배기를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우수한 유전적 특질을 은연중 광고한다. 여성은 웃기는 남성을 선택함으로써 자식들에게 좋은 유전적 이득을 물려준다. 여성들 앞에서 남성이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구사하는 유머는 수공작이 암컷 앞에서 펼치는 화려한 꼬리이다.

<열 번째 연장> 진화의 장 너머 보이는 풍경
조류 생태학자 고든 오리언스에 따르면 우리 인류는 선사 시대의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생활해온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대해 선천적으로 끌리게끔 진화하였다. 조경 연구자 제이 애플턴의 ‘조망과 피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끔 진화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을 높게 쳐주는 것도!
사람들은 어떤 공간의 한복판보다는 언저리를 선호, 나무그늘이나 지붕, 차양, 파라솔 아래처럼 머리 위를 가려주는 곳을 측면이나 후면만 가려 주는 곳보다 선호, 측면이나 후면을 가려주는 곳을 온몸을 사방에 드러내는 곳보다 더 선호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자연 그 자체에 깃든 외부적 실재가 아니라 잡식성 영장류인 인간이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특정한 환경을 잘 찾아가게끔 그 환경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정서일 뿐이다.

<열한 번째 연장> 자연의 미
사람들은 인공적인 환경보다 자연적인 환경에 더 호감을 느낀다. 물이 부족한 사바나에서 대다수 시간을 보낸 우리 인류는 어떠한 경관이건 그 안에 물만 들어 있으면 미적 쾌감을 느끼고 고요함이나 평화로운 정감에 흠뻑 빠지게 진화됐다. 동물이나 꽃에 대한 선호는 동물에 매혹되는 심리는 동물이 우리 먹이이고 우리가 동물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꽃은 오래지 않아 과일이나 견과, 덩이줄기 같은 음식물이 나게 되리라고 알려주며 초식동물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혹된다는 가설이 있다.

<열세 번째 연장: 이야기의 생물학>
현실 속의 사람들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도 마치 인간이 진화해 온 환경 하에서 생존과 번식을 최대화했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간이 허구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극 중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주게 설계된 적응이다. 문학작품 안에서 보편적인 인간본성이 그 작품의 시대적 문화적 특수성에 비추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다윈주의 문학비평이다.

<열네 번째 연장: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발정기가 사라져 배란이 은폐된 우리 종은 배란 주기 내내 줄기차게 성관계를 하도록 진화하였다. 하지만 인간 여성은 발정기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배란 주기 내내 성관계를 할 수 있긴 하지만 성관계에 대한 감수성이나 욕망이 언제나 똑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발정기의 진화적 기능은 정자 그 자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 상대를 더 까다롭게 고르기 위함이므로 여성의 가임기는 곧 여성의 발정기이다.

<열다섯 번째 연장: 털이 없어 섹시한 유인원>
진화생물학자 마크 페이겔과 월터 보드머는 오직 인간만이 불을 사용하는 법을 터득했고 따뜻한 옷과 주거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뜨거운 햇볕과 차디찬 냉기, 퍼붓는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털이 없어졌다고 본다. 털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기생충 없는 건강한 사람임을 이성하게 광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선택된 구애 도구라는 것이다.

<열여섯 번째 연장: 가을빛이 전하는 말>
타는 듯한 가을빛은 나무가 해충에게 전하는 경계 신호라고 본다. 가을 색소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따르므로 오직 건강한 나무만이 진하고 뚜렷한 가을 빛깔을 낼 수 있다. 진딧물은 이처럼 나무들이 각기 다르게 내는 신호들에 반응해서 가장 형편없이 단풍 든 나무에 내려앉는다.

<열일곱 번째 연장: 도덕은 본능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보편적인 도덕 본능을 진화시켰다.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선택으로 만든 이러한 도덕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게 한다. 도덕성은 우리의 조상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풀고자 선택된 보편적인 심리기제의 산물이다.

<열아홉 번째 연장: 음악은 왜 존재하는가>
음악활동이 한 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음악은 사슴의 큰 뿔이나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남성이 자신의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과시하여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 행동이라는 가설, 엄마가 갓난아기를 달래는 자장가로부터 음악이 기원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미스터리이다.

아직도 진화 이론은 창조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과학이라고 믿거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다윈 혁명은 어쨌든 진행 중이다. (241쪽)

몇 가지를 정리해봤지만 대체로 가설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설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내가 학자들처럼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지는 않겠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광활한 신천지(다윈주의 문학비평, 소비의 진화적 분석, 진화음악학, 종교의 진화적 분석, 다윈주의 문화 연구, 진화 미학, 윤리의 진화적 분석, 법의 진화적 분석, 다윈의학, 다윈미식학 등)가 우리 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야 새로운 것들에 눈을 뜬 유쾌한 책 읽기로 끝났지만 부디 좋은 학자들이 전중환 박사의 뒤를 이어 진화심리학을 탄탄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 지방 귀족 히에로니무스 칼 프리드리히 뮌히하우젠 남작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 뛰어난 사냥꾼이자 재미있는 만담가라는 명성과 출정에서 공적을 세운 독립적인 지방 귀족이라는 신분 정도만 남겼을 뿐인데 터무니없는 사냥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담가로서 지역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다.

그는 술잔을 나누고 담배를 피우면서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통상적인 사냥 체험담과 과장된 재담들을 뛰어넘는 이야기 솜씨를 보였는데 이런 것들이 책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이 책은 고트프리트 A.브뤼거가 괴팅엔 대학 강사 시절 라스페가 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보고 독일 지방의 이야기가 영국에서 먼저 쓰인 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독일어로 다시 쓴 것이 시작이 되었다.

흔히 <부활한 걸리버>로 불리기도 하는데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뮌히하우젠 남작을 보고 있노라면 걸리버가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무시무시한 늑대를 만나 본능적으로 주먹을 벌어진 아가리에 넣었다가 녀석의 내장을 움켜쥐고 마치 장갑을 벗듯이 안쪽이 바깥이 되도록 훌렁 까뒤집었다든가, 달아나는 적군과 뒤섞여 요새 안으로 침입하자 갑자기 방어문이 내려지면서 말의 뒤쪽 반 토막이 싹둑 잘려나갔는데도 분수대의 물을 엄청나게 먹었다느니, 그 말의 반쪽을 찾아 초원으로 갔는데 나머지 말 반쪽이 암컷들과 하렘을 즐기고 있었다느니, 꿀벌을 도와주려고 곰을 향해 도끼를 던졌는데 너무 높이 던지는 바람에 달에 떨어진 걸 찾아오느라고 터키산 콩을 심었더니 무럭무럭 자라서 달에 까지 닿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보며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또 굉장히 빠른 발을 지닌 남자,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남자, 제 아무리 멀리 있는 과녁도 맞출 수 있는 명사수, 숲 전체를 끌어당길만한 힘을 가진 남자, 폭풍 같은 바람을 코에서 일으킬 수 있는 남자를 얻어 위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류는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이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개를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굉장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달 여행 이야기로, 머리를 따로 떼어서 들고 다니거나 집에 두고 다녀도 되는 달 주민 ‘끓이는 종족’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종족들은 모두 나무에서 태어나며 새 생명체의 정신은 항상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자연에 의해 특별한 용도에 맞게 만들어져 군인이, 철학자가, 법률가, 소작인, 농부들이 태어나는 식이라 어렴풋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겹쳐진다.

게다가 늙으면 죽지 않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연기로 사라진다니! 땅도 좁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족으로 태어난다면 별 걱정 없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화산을 여행하다가 불의 신인 불카누스와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로프스를 만난다거나 온통 치즈로 된 섬에 도착했다든가 엄청나게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디선가 한 번은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아무래도 이 책 자체가 오래 전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을 참고한 다양한 책들을 먼저 본 영향이 아닐까싶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허풍이 어디 있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이 통 큰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무엇을 얻으려고 이 책을 읽기 보다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쳇바퀴 속을 오늘도 힘차게 구르고 있는 우리 두 발과 두 발에 명령을 내리는 뇌에게 주는 휴식이자 선물이 될 터이다.

머리 아플 때,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잠깐잠깐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아주 유용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이네 설맞이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1
우지영 글,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지 위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왕짱구 연이가 활짝 웃는 모습이 앙증맞다.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설을 맞는 연이네 집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놓았는데

설빔짓기 -> 장보기 -> 가래떡 만들기 -> 연만들기 -> 음식 만들기-> 묵은 세배 

-> 연종포 쏘기 (귀신 쫓는 소리)-> 윷놀이-> 복조리 장수 외치는 소리 -> 차례 지내기로

이어지는 내용이 알차다.

설빔, 다듬잇소리, 세밑 대목장, 댕기, 사금파리, 부페풀, 짚북데기, 두엄자리, 고샅, 두루주머니,

타래버선 같은 생소한 낱말들이 등장하고 호롱불, 화로, 실패, 인두, 다듬이, 횟대, 한자로 쓴 간판 

들, 경대, 절구, 떡메, 벼루, 곰방대, 지게, 가마솥, 청사초롱, 맷돌, 갓, 남자 여자 따로 상받기, 망건,
비녀를 꽂은 할머니, 한복 입은 사람들을 그림으로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불어,'그믐밤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 는 건 더러 들어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묵은 해에 진 빚은 섣달 그믐 가기 전에 갚는다''부지깽이도 꿈틀댄다는 섣달그믐'

'그믐밤 오기 전에 집안 구석구석 등잔불 밝혀 가는 해 잘 보내고 오는 해 잘 맞게 한다'

'섣달 그믐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 는 것은 연이네 식구들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다.

아이들은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겠지만 설날의 유래, 설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 하는 일,  

먹는 음식, 놀이를 부록으로 곁들여 놓아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게  

해놓았다. 설에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이지신 호랑이
이어령 엮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00년 전 자취를 감추고 만 한국호랑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춥고 먼 시베리아로 가야 한다고 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와 같은 아종에 속해 있다. 라죠 자뽀베드닉(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최기순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니콜라이 바이코프가 만주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의 일생을 그린 「위대한 왕」 서문을 재일조선인 학자인 서경식이 썼는데 서베를린 동물원에서 마주친 호랑이에 대해
‘아무르 호랑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300킬로그램 이상 체중이 나가리라. 얼굴만 보더라도, 어른 팔로 한 아름은 족히 될 법해 보였다. 호랑이는 우울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고고하고도 위엄 가득한 모습이었다. 30분 이상이나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전혀 질리지가 않았다.‘
라고 표현한 그 모습이다.
 「十二支神 호랑이」는 한국(호랑이), 중국(虎), 일본(とら) 호랑이에 대한 고찰을 다룬 책으로책임편집은 이어령 선생님이 맡으셨다지만 실제 내용은 한, 중, 일 학자 16명의 시선인 만큼 호랑이에 대한 다양한 문화코드를 만나 볼 수 있다.

 책을 펴면 우리에게 낯익은 민화 <까치호랑이> 얼굴과 맞닥뜨리게 되어 딱딱한 책을 쉽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문학 속에 나타난 호랑이 이야기’였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우처럼 호랑이를 친근하게 여기지 않아 이야기 자체가 드물다는 것과 그런 이유로 일본 문화 속에 호랑이는 자취조차 희미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마다 요의 글에서
‘또한 일본에 호랑이가 서식했다면 해외에서 호랑이를 퇴치한 이야기가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다. 문학적 상상력에서 호랑이의 부재는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밝힌 것을 보면서, 우리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를 배척하고 싫어하기보다는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혹은 무섭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승화시킨 조상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리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받은 셈이다.
 책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삼국의 호랑이 문화가 독자적으로 성립하여 개별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면서 융합되기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시켜간다는 윤열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날 중국 회하(淮河) 이북에는 귤나무가 없었다는데 어떤 사람이 남쪽에서 귤 묘목을 얻어와 옮겨 심었더니 몇 년 후에 본래 달고 맛있는 귤이 열려야 할 나무에 작고 신 탱자가 열렸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귤이 회하를 건너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라는 엄숙한 한마디가 기록돼 있다. 식물이 토양과 기후에 따라 이화될 수 있듯이 문화나 사상 종교의 전파에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토양과 기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젠 누구 것이 먼저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교통의 발달로 거리가 가까워진만큼 문화의 넘나듦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에게 풍성하게 남아 있는 자료들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이나 세계 여러 나라 자료까지도 살펴보고 연구해서 또 다른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책을 덮고나니 이 자료들을 토대로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원고지 앞에 앉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