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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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방 귀족 히에로니무스 칼 프리드리히 뮌히하우젠 남작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 뛰어난 사냥꾼이자 재미있는 만담가라는 명성과 출정에서 공적을 세운 독립적인 지방 귀족이라는 신분 정도만 남겼을 뿐인데 터무니없는 사냥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담가로서 지역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다.

그는 술잔을 나누고 담배를 피우면서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통상적인 사냥 체험담과 과장된 재담들을 뛰어넘는 이야기 솜씨를 보였는데 이런 것들이 책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이 책은 고트프리트 A.브뤼거가 괴팅엔 대학 강사 시절 라스페가 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보고 독일 지방의 이야기가 영국에서 먼저 쓰인 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독일어로 다시 쓴 것이 시작이 되었다.

흔히 <부활한 걸리버>로 불리기도 하는데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뮌히하우젠 남작을 보고 있노라면 걸리버가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무시무시한 늑대를 만나 본능적으로 주먹을 벌어진 아가리에 넣었다가 녀석의 내장을 움켜쥐고 마치 장갑을 벗듯이 안쪽이 바깥이 되도록 훌렁 까뒤집었다든가, 달아나는 적군과 뒤섞여 요새 안으로 침입하자 갑자기 방어문이 내려지면서 말의 뒤쪽 반 토막이 싹둑 잘려나갔는데도 분수대의 물을 엄청나게 먹었다느니, 그 말의 반쪽을 찾아 초원으로 갔는데 나머지 말 반쪽이 암컷들과 하렘을 즐기고 있었다느니, 꿀벌을 도와주려고 곰을 향해 도끼를 던졌는데 너무 높이 던지는 바람에 달에 떨어진 걸 찾아오느라고 터키산 콩을 심었더니 무럭무럭 자라서 달에 까지 닿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보며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또 굉장히 빠른 발을 지닌 남자,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남자, 제 아무리 멀리 있는 과녁도 맞출 수 있는 명사수, 숲 전체를 끌어당길만한 힘을 가진 남자, 폭풍 같은 바람을 코에서 일으킬 수 있는 남자를 얻어 위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류는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이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개를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굉장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달 여행 이야기로, 머리를 따로 떼어서 들고 다니거나 집에 두고 다녀도 되는 달 주민 ‘끓이는 종족’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종족들은 모두 나무에서 태어나며 새 생명체의 정신은 항상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자연에 의해 특별한 용도에 맞게 만들어져 군인이, 철학자가, 법률가, 소작인, 농부들이 태어나는 식이라 어렴풋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겹쳐진다.

게다가 늙으면 죽지 않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연기로 사라진다니! 땅도 좁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족으로 태어난다면 별 걱정 없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화산을 여행하다가 불의 신인 불카누스와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로프스를 만난다거나 온통 치즈로 된 섬에 도착했다든가 엄청나게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디선가 한 번은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아무래도 이 책 자체가 오래 전에 출간되었으니 이 책을 참고한 다양한 책들을 먼저 본 영향이 아닐까싶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허풍이 어디 있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이 통 큰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무엇을 얻으려고 이 책을 읽기 보다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쳇바퀴 속을 오늘도 힘차게 구르고 있는 우리 두 발과 두 발에 명령을 내리는 뇌에게 주는 휴식이자 선물이 될 터이다.

머리 아플 때,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잠깐잠깐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아주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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