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알료샤 블라우 그림, 슈테파니 옌트겐스 엮음, 김경연 옮김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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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사계절 펴냄


이 책은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수상자 및 후보자였던 세계 각국 작가들의 작품을 엮어놓은 것이다. 협회장인 주자네 헬레네 베커 박사는 ‘성인 중계자가 없이는 문학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모두들 있는 힘을 다한다고 밝혔다. 동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다들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새겨져 있다.’고도 했는데 이 역시 동감이다.

<우리, 그리고 동물> 등 2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은 보물섬과도 같다. 아는 작가라고 해봐야 기껏 페터 헤르틀링, 미리암 프레슬러밖에 없지만 모르는 작가면 또 어떠랴.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것이 기쁨이고 이런 뛰어난 작품을 한 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또한 기쁨이다.

이 작품집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름다운 동화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누이가 읽어준 책을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서 나무마다 우편함을 매달고 그 안에 책을 넣어둔다는 다비드 칼리의 <우편함을 심은 남자>, 손님을 맞는 태도가 다른 동물을 등장시켜 재미를 주는 톤 텔레헨의 <손님>, 파르동봉봉이라는 사탕가게를 열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탕을 나누어주는 호이 씨 이야기를 그린 마르야레나 렘브케의 <파르동 봉봉> 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것으로, 감각이 예민한 내가 여섯 번째 감각으로 다른 이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마을 주변 부랑자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타미 셈-토브의 <나의 여섯 번째 감각> 이나, 난쟁이 거북이인 보일레가 우연한 기회에 그들을 괴롭히던 거대 여왕 라우테를 외계인의 비행선에 태우게 되어 자유와 행복을 찾는다는 이바 프로하스코바의 <보일레와 자연법칙>, 난민 문제를 다룬 로버트 폴 웨스턴의 <분노의 땅>, 제니 롭슨의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다>, 로세 라게르크란츠의 <나의 벚나무>, 이네스 갈란드의 <켑의 열매>, 페터 헤르틀링의 <폐쇄된 문>,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키르스텐 보이에의 <나, 운이 좋지 않아?> 등이 있다.

세 번째는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사랑을 잃어버린 후 작은 사람이 되어 구두 상자 속에 살았다는 유타 리히터의 <한때 난 구두 상자에서 살았다>, 회색 씨와 파랑 부인의 일상 속을 들여다보며 잔잔하게 미소짓게 되는 미리암 프레슬러의 <회색 씨와 파랑 부인>, 죽음을 앞둔 증조할아버지에게 그의 소원대로 백살 기념 뷔페상을 차려주는 손녀의 따뜻한 이야기를 다룬 수잔 크렐러의 <백살> 등이다.

여기 묘사된 것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면, 자세히 살펴보고 상상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독일의 스무고개 놀이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처럼 말이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8쪽)

그들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두어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내가 본보고 상상한 것들을 다시 여기 옮기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 자신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책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집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책들도 세상으로 나가 여행을 해야 한다. 바람에 흩어지는 낟알들처럼. -우편함을 심은 남자 중(29쪽)’이 문장들 때문인데, 내 책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이런 마음은 생기지 않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멀었다. 조금 더 내 욕심을 채운 뒤에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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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스토리텔링의 비밀이 된 인문학 간편 읽기
박정자 번역.해설 / 인문서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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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학>이 고전이긴 하지만 몇 가지 굵직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지금 읽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도 없지 않고 아주 유익하다거나 재미있는 책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책의 1/4정도에 해당하는 앞머리 저자의 서문과 해설이 톡톡 튄다.

‘소설, TV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스토리의 흐름이 급격히 변화할 때 우리는 반전(反轉)이 있다고 말한다. 놀라운 비밀과 반전의 연결이 정교하면 할수록 독자, 관람자, 혹은 시청자는 쾌감을 느낀다. 최첨단의 트렌디한 이론인 것 같지만 실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수립한 미학이다.’(6쪽)

‘오늘날 한국의 가장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까지도 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에 통달하고 있다. 막장 드라마의 반전과 출생의 비밀 등이 모두 그의 이론이기 때문이다.’(13쪽)

기원전 335년에 만들어진 <시학>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막장 드라마의 기본이 되어주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 드라마를 보는 우리가 시학에 정통하고 있다는 이 달달한 미끼로 호기심을 양껏 긁어놓은 뒤에 총 26장 중 핵심적인 9장에 대해 해설을 해주는데 파토스, 에토스, 카타르시스, 미메시스 같은 용어들을 쉽게 풀이해주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삶도 간략하게 보여준다.

뒷부분에는 총 26장에 걸쳐 시학의 핵심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는데 힘들이지 않고 술술 읽을 수 있다. 다 읽은 후에 앞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해설 부분을 읽는 수고를 곁들인다면 <시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159쪽 분량의 문고판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책 무게만큼 아주 발랄하다. 모방과 깨달음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 했으니 시학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마당에 막장 드라마를 한 번 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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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보 상수리 큰숲 2
이미영 지음, 송효정 그림 / 상수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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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 든 이후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니 꽤나 오랜 시간 명절을 싫어한 셈이다. 그 싫음의 요건을 충족하게 만들어준 건 당연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치러야 하는 고단함이 으뜸이고, 두 번째 요인은 그리 모여 앉아 딱히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멍하게 앉아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는 그 순간이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아무리 달라도 가장 어른이신 아버지, 어머니의 취향에 따라 함께 볼 수 있는 건 명절이면 빼놓지 않고 중계해주던 씨름판! 덩치 큰 남자들이 팬티만 입고 나와서 모래판에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늘 봐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그 경기를 왜 좋아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 바보>라는 제목이나 표지 그림만 봐서는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책은 그렇게 뜨악하게 씨름판을 바라보는 내 표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혼녀에다가 애까지 딸린 엄마를 사랑하는 공 기사 아저씨가 씨름을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아는 순간 어린 봄이가 그랬던 것처럼 ‘왜 하필 씨름이야?’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났으며, 짤막짤막하게 끊어지는 문장도 괜히 거슬려서 이걸 끝까지 읽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미순이>에서 작가가 보여준 ‘울면서 웃기기’ 신공을 기억하는 터라 참고 조금만 더 읽어보기로 했다. 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특별히 이래라저래라 참견하지 않고 그 많은 음식들을 우적우적 먹어대곤 돌아가는 그 특이한 공 기사 아저씨가 은평 구민 체육대회에서 씨름을 할 때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씨름판을 말로 전달하는 그 순간이 영상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온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봄이가 경수보다 멋진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나고 무작정 싫기만 했던 공 기사 아저씨를 아빠처럼 의지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공 기사 아저씨와 연애를 하는 엄마가 된 것처럼 뿌듯해졌다.

 

 캐릭터를 분명하게 살리는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슴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인 사춘기 소녀 봄이와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배달 일을 하는 공 기사라는 등장인물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거창한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옆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기만 할 뿐 공 기사처럼 이래라저래라 교훈을 늘어놓지 않는 게 참 좋다. 게다가 점점 늘어가는 이혼 문제와 편부, 편모 아래 자라는 아이들 문제를 어둡게 풀어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똑 같은 생활은 아니지만 모두들 제 나름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춘기 청소년들이나 그에 못지않게 사는 게 재미없는 어른들이 한 번쯤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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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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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이러저러한 상을 받았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절대 만나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읽어볼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나도 꽤나 편협한 각도 안에서만 책을 고르는 유치한 독자인 셈이다. 그러니 내 옆을 누가 스쳐지나갔건 관심도 없을 뿐더러 더럽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이름도 없는 그 아이에게 눈을 흘기고 인상을 찌푸린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완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소녀인 이년, 언나, 간나, 드드덕이 보여주는 거칠 것 없는 말투는 조용하고 아늑한 풀밭을 거닐다가 별안간 덤벼드는 암사자를 만난 어린사슴의 심장처럼 쿵 하고 떨어지다가 뛰는 것을 멈출만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모르는 척, 안 본 척 헛기침 한 번 하고 그냥 자리를 뜨고 싶게 만드는 불안감이 이 소설을 지배한다. 하지만 그 뻔뻔함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문장들이 사금처럼 숨어 있어 뒷장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저곳을 떠도는 그 아이에겐 이름이 없다. 출생신고조차 안 된 아이, 철저하게 외면당한 그 아이를 바라봐주는 것은 똑같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뿐이다. 장미 언니, 식당 할머니, 불을 삼키는 대장,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던 목소리와 폐가에 숨어지내는 남자, 유미와 나리, 성호.

 이들은 하나같이 상처가 있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은 자꾸만 다른 언덕으로 불러대는 무지개 같은 것이다. 결코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있는 자들만이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기에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단다. 모두들 똑같은 상태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자꾸만 빈자(貧者)들의 집합이 커져가는 이 세상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려니 눈알이 시큰거려 피하고 싶지만 이게 현실인 걸 어쩌랴..그러면서도 돈 한 푼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가 너무나도 쉽게 다음 거처를 마련하고 도움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에는 정작 현실성이 떨어져서 높은 평점을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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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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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러브레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주은, 손철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아니지,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에서는 벗어날지 몰라도

 서로 좋아하는 분야가 같으니 사랑하는 이라고 소개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일탈,

취미와 취향, 노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 엄마 라는 열 가지 주제에 대해

손철주는 동양화를 , 이주은은 서양화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두 사람 모두 어찌나 아는 것도 많고 이야기도 잘 하는지

그림에 문외한인 나도 푹 빠져서 보고 들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데 <결혼>이라는 제목을 단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과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슬픈 눈동자가 강하게 이끌었던에드워드 번존스의 <마리아 잠바코>,

날아다니는 나비와 놀고 싶은 앵무새를 그렸는데 마치 자살하는 이의 모습같았던

호미의 <앵무희접도>, 시들해진 국화인데도 아름답게 느껴진 이인상이 그린 <병국도>는

두고두고 머리에 남았는데

취향은 달라도 취미는 같은 사람들끼리 이처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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