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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들은 이러저러한 상을 받았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절대 만나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읽어볼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나도 꽤나 편협한 각도 안에서만 책을 고르는 유치한 독자인 셈이다. 그러니 내 옆을 누가 스쳐지나갔건 관심도 없을 뿐더러 더럽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이름도 없는 그 아이에게 눈을 흘기고 인상을 찌푸린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완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소녀인 이년, 언나, 간나, 드드덕이 보여주는 거칠 것 없는 말투는 조용하고 아늑한 풀밭을 거닐다가 별안간 덤벼드는 암사자를 만난 어린사슴의 심장처럼 쿵 하고 떨어지다가 뛰는 것을 멈출만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모르는 척, 안 본 척 헛기침 한 번 하고 그냥 자리를 뜨고 싶게 만드는 불안감이 이 소설을 지배한다. 하지만 그 뻔뻔함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문장들이 사금처럼 숨어 있어 뒷장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저곳을 떠도는 그 아이에겐 이름이 없다. 출생신고조차 안 된 아이, 철저하게 외면당한 그 아이를 바라봐주는 것은 똑같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뿐이다. 장미 언니, 식당 할머니, 불을 삼키는 대장,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던 목소리와 폐가에 숨어지내는 남자, 유미와 나리, 성호.
이들은 하나같이 상처가 있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은 자꾸만 다른 언덕으로 불러대는 무지개 같은 것이다. 결코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있는 자들만이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기에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단다. 모두들 똑같은 상태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자꾸만 빈자(貧者)들의 집합이 커져가는 이 세상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려니 눈알이 시큰거려 피하고 싶지만 이게 현실인 걸 어쩌랴..그러면서도 돈 한 푼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가 너무나도 쉽게 다음 거처를 마련하고 도움을 받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에는 정작 현실성이 떨어져서 높은 평점을 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