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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처음 만나는 듯한 이 단어 '미사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사고'는 myth 神話 + imago, 心象의 합성어로
이상화된 신화 속 등장 인물의 이미지를 뜻한다.
미사고의 숲의 간단한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니 가슴이 아프다.
주인공 스티븐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데
어릴 때 지냈던 라이호프 숲 떡갈나무 집에서 형을 만난다.
같은 숲에서 아버지가 실종되고, 아버지와 비슷해져가는 형
크리스찬을 보면서 숲이 당기는 힘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형도 어느날 아버지처럼 숲으로 가버리고
숲이 미치는 힘으로 인해 스티븐에게도 미사고들이 생겨나고,
누구의 미사고인지 모르는 귀네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마저 숲으로돌아가고 만다.
사랑하는 귀네스를 찾아, 자꾸만 밀어내기만 하고
중심부로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숲으로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하던 중에 비행사 키튼을 만나 함께
숲을 탐험하게 된다.
라이호프 숲에는 미사고들이 가득 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낸
미사고와 형이 만들어낸 미사고들, 그리고 스티븐이 만든 미사고들..등등의 미사고들.
신화 속에서 헤매는 것같은 독특한 분위기
그속에 어느새 스티븐도 신화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숲의 약탈자인 크리스찬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스티븐과
숲을 위해 그런 스티븐을 돕는 미사고들.
중세시대, 신석기, 구석기를 마구 넘나드는 공간
사랑하는 귀네스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스티븐과 키튼
결국 키튼은 자신이 전쟁 중에 목격했던 도시를 찾아 떠나고
스티븐은 홀로 남아 뜻하지 않게 자신의 형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죽은 채로 돌아온 귀네스
시간의 장벽을 넘어간 스티븐은 또다른 전설이 되고..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신화인지 선도 분명하지 않다.
숲이 떡갈나무산장을 침범해 숲의 일부를 만들어버린 것처럼
신화도 사실도 모두 하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3년전 일이었는데
그땐 뭐가 그리 급했는지 페이지 넘기기에 급급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두 번 읽게 되면 느긋함이 생기는 모양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미사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으니 다음에 한 번 더 읽으면 인간의 머릿속에 대해
알 수 있으리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간다는 것도 좋은 일 같다
이번에 임용고시를 치른 친구와 얘길 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다.
하도 답답해서 성당을 다니는 그 친구가 무당을 찾아갔다고 했다.
'언니, 시험 보고 왔지?"
그러더란다.
그 얘기 끝에 서정범 교수가 나와서 해던 말들을 들려주었는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무당(점술가라고 해야하나?)
들이 맞히지만 자신도 모르는 것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지갑 속에 얼마가 들었는지 자신이 알고 있으면 그걸 맞힐 수
있지만, 아내가 지갑 속을 채워주었을 경우는 맞히지 못하는)
결코 모르더라는..
그럼 결국 독심술을 하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뜻인데.
이런 미사고들이 생성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신화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숲의 힘을 빌어
슬금슬금 모습을 나타내는 것
숲은 위대한 무당과 같은 거다.
스티븐이 귀네스를 만나 행복해졌으면 싶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 그곳에서 스티븐은
다시 귀네스가 돌아올 것으로 믿고 기다리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둘이 다시 재회하지 못한 것이 무척 슬펐다.
이걸 읽으면서 만약 내가 (우연의 음악 덕분에 '만약에' 병이 걸린
모양이다)
신화속 인물을 불러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봤는데
생각나는 신화 속 인물들이 죄다 서양인물 뿐이었다
어릴 때 많이 접해본 것도 그쪽 신화였고 커서도 그 영향으로
계속 우리와 다른 그들이 편안하게 다가왔으므로..
귀네스도 그 신화가 존재했던 시대의 말을 썼기 때문에
처음에 스티븐과의 대화가 어려웠는데 만약 내가 그런 이들을
불러낸다면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쉽다.
우리도 근사한 신화가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었던 작업인데 간단한 신화에 살을 좀 두툼하게 붙여서
울룩불룩 볼 것 많은 신화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