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 소년 창비아동문고 232
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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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을의 <가끔씩 비오는 날> 이후로

정말 마음에 드는 단편 동화집이다.

작가의 말대로 부끄럽고 슬프고 화나고 나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어린 친구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다.

읽을 게 부족해서 늘 똑같은 책만 보다가

국가와 수도를 몽땅 외워버린 진수,

외우기 힘들 것을 고려해서 간단하게 지은 이름이

천재시인 백석과 같아서 난데없이 백석의 시를

외우려던 백석과 그의 아버지,

장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엄마에게서

맘대로 쓰라고 받은 천 원을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은 엉뚱하게 맛도 없고 맵기만 한 떡꼬치를

먹게 되는 열두 살짜리 나,

언제나 노력을 해도 입선이나 가작의 수준에 머물러

좋은 대학 가는 거 말고 그냥 유람선의 선장이 되어볼까

생각하는 은지,

엄마가 없는 하룻동안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지내며

악몽 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길 기다리는 연이.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문장 하나하나에 살아있다.

아픈 현실을 그리면서도 그저 스크린 밖으로 툭 던져지는데

가슴이 저릿하고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온다.

참 잘 쓴 단편 동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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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의 숨어 있는 방 창비아동문고 228
황선미 지음, 김윤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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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릴 줄은 몰라도 표지가 강하게 당기는 힘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황선미라는 작가의 이름이 당기는 힘은 굉장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숨어 있는 방'과 '환타지'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방을 찾아내면 어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신비한 모험을 떠나는

<율리시스 무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심드렁하게 첫 장을 넘긴 내게 국어사전을 즐겨보는 취미가 있었다는 작가의 말은

눈이 확 뜨이게 반가운 것이었는데 나 역시도 한때 국어사전에 심취해

예쁜 말들을 찾으면 보석을 찾은 기분으로 공책에 적어놓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동류의식 같은 게 생겨났고 심드렁했던 내 기분은 어느샌가 날아가버렸다.

 

'즐거운'이라는 예쁜 뜻을 가진 나온은 몸은 약해서 운동 따위는 하지도 못하고

엄마의 손에 인형처럼 자라지만 슬슬 반항을 시작할 나이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재개발이 확정되어 하나둘 떠나버리고 몇 집 안 남은 가운데

나온이네도 이사를 준비하는데 엄마는 막상 갖고 있던 '넝쿨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그걸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겠다 고집을 부린다.

시골학교로 발령이 나서 일 주일에 한 번 집에 와야 하는 아빠에게 어느 날 심부름을 갔다가

나온이는 넝쿨집을 수리하는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되고 집이 다른 세계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넝쿨집의 신비한 힘에 이끌린 나온이는 엄마 몰래 그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고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또래의 남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향기를 모은다던 그 아이는 나온이가 다칠 때마다 향기를 나누어주었는데

천식을 앓고 있던 나온이에게 그 향기는 말할 수 없이 감미롭고 기운나게 해주는 약이 되었다.

집수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나온이는 숨어 있는 다락방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할머니와 라온의 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쌍둥이로 태어난 라온이가 어릴 때 죽었고

그 때문에 이 집에서 살기를 그토록 꺼렸다는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라온을 따라가려던 나온에게 할머니는

'너만의 시간,너만의 방'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리고 이제는 건강하게 잘 살라고 하면서

그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나온이가 쓰던 '나의 왼손'이라는 일기장은 나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잃어버린 라온이를 만나는 또 하나의 장소였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 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어슐러 K. 르귄이 <어둠의 왼손>에서 말하듯이.

 

라온이와 나온이를 만나는 내내 그렇지 않아도 요새 나빠진 시력 때문에

안경 탓을 하고 있는데 안개를 헤치고 걸어가는 나온이를 뒤따르느라

자꾸만 눈을 비벼댔더니 이제는 아예 눈이 빨개졌다.

유아기와 어린이 시기를 벗어나 이제 막 청소년기로 접어들려는 나온이의

성장일기를 본 것 같다.

"너도 이제 삼신 할미 손길에서 놓여나도 되겠구나. 더는 어린애가 아냐.

넉삼 년 동안 졸였던 마음을 나도 풀어놓으마. 너만의 시간으로 가서 네 힘으로 세상을 견뎌라"

숨어있는 방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나온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쩌면, 라온이는 저승의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처럼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다리를 건너

청소년기에 들어서기 위한 안내자 같은 것은 아닐까?

 

*5학년 이후 적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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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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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난 긴 이야기에 매료된다.

단편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 책은 하도 소문이 무성해서

기대감을 잔뜩 갖고 본 책이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 "짜장면 불어요','3일간','봄날에도 흰곰은 춥다'

'지구는 잘 있지?' 이렇게 4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네 편 모두 '찰칵' 어떻게 그런 순간을 찾았을까 싶게

달콤하고 때론 지극하게 우울하다가도 신선하며 흥미롭다 못해 자극적이다.

푹 빠져 읽을 만하면 끝이 나고 끝이 나고 하는 통에 아쉬움이 큰 것은

원래 단편이 갖고 있는 성질 탓이려니,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 뒷 이야기를

이렇게 생각하기 싫어하게 되었나 반성도 해봤다.

하지만, 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쓰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짧으면서도 울림이 강한 책들이 얼마나 많으냐 말이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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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양장)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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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엄마한테 배운 한글은

ㄱ 과 ㅏ 를 합하면 '가' ㄴ 과 ㅏ 를 합하면 '나' 이런 식이었으나

요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걸 보면 '구름' '나비' 하늘' '문' 동생' 같은

통문자를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한다.

통문자로 익히는 것도 좋은 일이겠으나 이 책을 읽고나선

새삼스레 어릴 때 배웠던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같이 자음과 모음을 차례로 연결시켜 참새처럼 따라 외곤 하던 게 그리워졌다.

 

장운이는 아내를 잃은 홧병으로 망치질을 잘못하다가 손목이 바스라져 누워있는 아버지와

누나인 덕이와 함께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마땅한 벌이도 없었기에 누이는 품을 팔고

장운이는 나뭇짐을 해서 윤초시댁에 부려주고 얼마간의 양식을 얻는 게 고작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장운이는 토끼를 쫓다가 건너 편 산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토끼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좋은 약수를 얻어다 준 댓가로 쌀을 얻고

조금씩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토끼눈할아버지한테서 글자를 배우게 된다.

아버지의 밀린 약값을 대신해서 덕이가 남의 집살이를 하러 떠나고

장운이는 석수였던 아버지 뒤를 이어 돌을 다루는 것을 배우면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던 중 그간 배운 글자로 덕이가 편지를 보내면서 덕이를 좋아하는 오복이와

약을 대주던 약재영감의 손녀 난이까지도 글자에 호기심을 보인다.

장운이가 돌을 다루는 솜씨를 지켜보던 점밭 아저씨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석수의 길로

들어선 장운이는 힘든 과정들을 묵묵히 이겨내면서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꼼꼼하게

적어놓게 되고 석수들은 그런 장운이에게 하나둘  글자를 배운다.

한양에서 하는 공사에 장운이까지 가게 되고 돌 하나를 얻어 열심히 연꽃을 새기는데

임금님이 행차를 하게 되고 장운이는 그 토끼눈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다.

익혀서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말을 그대로 지킨 장운이 때문에 할아버지도 행복하고

깨진 연꽃잎 하나를 물이 흐르는 길로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장운이도 흡족한 미소를 띤다.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그 시절 양반들이 주로 사용하는 진서가 있는 마당에

새롭게 글자를 만들어 천한 것들도 읽고 쓰게 하는 것이 마뜩찮았으리라.

한글 제정의 어려움과 그보다 더 힘들었던 반포의 어려움을 장운이를 통해서

흥미롭게 알려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글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과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와 내게 이렇게 생각한 것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 4학년부터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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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철학자 - Three Ducks & A Philosopher
우애령 지음, 엄유진 그림 / 하늘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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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정한 논쟁 상대가 부족함을 아쉬워하면서도 철학을 공부하며, 

사람들과 철학을 논하며 살기를 꿈꾸는 친구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가 보면 제일 부러워할 사람이 여기 등장하는 '철학자'일 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자칭 '크산티페'인 작가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진정으로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는 아내이다.

철학자라고 하지만 너무 고리타분하지도 머리 복잡하지도 않은 데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고

학자다운 면을 드러내는가 하면 적당한 유머와 위트를 갖춘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무 곳에서나 혼자 낄낄대고 웃느라 뭇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따뜻한 책이다.

아울러, 딸이 그린 그림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정말이지 보기 좋은 가족이다.

이 땅에 철학자로 태어나 정말로 좋은 아내와 아이들을 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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