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정리 편지 (양장)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엄마한테 배운 한글은
ㄱ 과 ㅏ 를 합하면 '가' ㄴ 과 ㅏ 를 합하면 '나' 이런 식이었으나
요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걸 보면 '구름' '나비' 하늘' '문' 동생' 같은
통문자를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한다.
통문자로 익히는 것도 좋은 일이겠으나 이 책을 읽고나선
새삼스레 어릴 때 배웠던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같이 자음과 모음을 차례로 연결시켜 참새처럼 따라 외곤 하던 게 그리워졌다.
장운이는 아내를 잃은 홧병으로 망치질을 잘못하다가 손목이 바스라져 누워있는 아버지와
누나인 덕이와 함께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마땅한 벌이도 없었기에 누이는 품을 팔고
장운이는 나뭇짐을 해서 윤초시댁에 부려주고 얼마간의 양식을 얻는 게 고작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장운이는 토끼를 쫓다가 건너 편 산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토끼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좋은 약수를 얻어다 준 댓가로 쌀을 얻고
조금씩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토끼눈할아버지한테서 글자를 배우게 된다.
아버지의 밀린 약값을 대신해서 덕이가 남의 집살이를 하러 떠나고
장운이는 석수였던 아버지 뒤를 이어 돌을 다루는 것을 배우면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던 중 그간 배운 글자로 덕이가 편지를 보내면서 덕이를 좋아하는 오복이와
약을 대주던 약재영감의 손녀 난이까지도 글자에 호기심을 보인다.
장운이가 돌을 다루는 솜씨를 지켜보던 점밭 아저씨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석수의 길로
들어선 장운이는 힘든 과정들을 묵묵히 이겨내면서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꼼꼼하게
적어놓게 되고 석수들은 그런 장운이에게 하나둘 글자를 배운다.
한양에서 하는 공사에 장운이까지 가게 되고 돌 하나를 얻어 열심히 연꽃을 새기는데
임금님이 행차를 하게 되고 장운이는 그 토끼눈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다.
익혀서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말을 그대로 지킨 장운이 때문에 할아버지도 행복하고
깨진 연꽃잎 하나를 물이 흐르는 길로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장운이도 흡족한 미소를 띤다.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그 시절 양반들이 주로 사용하는 진서가 있는 마당에
새롭게 글자를 만들어 천한 것들도 읽고 쓰게 하는 것이 마뜩찮았으리라.
한글 제정의 어려움과 그보다 더 힘들었던 반포의 어려움을 장운이를 통해서
흥미롭게 알려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글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과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와 내게 이렇게 생각한 것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 4학년부터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