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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베 고보는 <모래의 여자>에서의 독특함에 매료당했던 작가인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즐거움을 작가의 이름에서 미리 40%는 가져왔다.
<타인의 얼굴>은 실험 사고로 얼굴을 잃은 한 남자가 소외되어 가는 과정 속에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하는 외로움과 고뇌, 사회를 향한 분노 등을 가면이라는 것을 통해
분출하고자 하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건 자신의 맨얼굴이 또다른 가면이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남겨진 세 권의 노트 속에 가면을 제작하는 과정과
가면을 쓰면서 변하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는데
그야말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분위기를 풍긴다.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얼굴, 목소리, 키, 상대방과 공유한 비밀, 버릇, 말투, 생각?
만약 내 얼굴이 사라진다면 아니, 모든 이들이 같은 얼굴을 갖고 있다면
과연 나는 내가 '나'인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으려나?
결국. 아닌 것 같지만 얼굴이라는 건 나를 나답게 만드는 커다란 조건이 되는 것이다.
성형중독이 온 나라에 온 세계에 퍼져 원래의 나는 묻어두고
자꾸만 타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들
예컨대, 살짝 각이 진 얼굴형과 쌍꺼풀이 없는 눈 등을 예쁜 여배우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 다른 사람을 탓할 것도 없겠다.
그렇게 남과 닮아가는 내가 많아지다보면 결국 나는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 가면을 몇 개씩 갖고 살아간다.
내 성정이 굉장히 내성적이라 남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을 버거워했었지만
탈을 쓰고 안 그런 척 연기를 하다보니 어느 정도 그런 시간을 즐길 수도 있게 된 것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해서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숨기고 탈을 쓴다는 건 나쁜 것만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고,그 가면이 나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냐
그 반대로 그 가면으로 인해 내 삶이 좀더 여유롭고 부드러워질 것이냐
다른 사람이 쓴 가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들이 남는다.
내가 지금 어떤 탈을 쓰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탈 밑에 나를 온전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가면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내게 한꺼번에 던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잠 안 오는 열대야를 대비해서 이 책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