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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때문에 그렇잖아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오늘 따라 마을버스가 만원이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다음 차를 기다릴 여유가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없던 탓이다.

두 정거장을 지날 무렵 운 좋게도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내리고 자리가 났다.

지친 몸을 부리고 창문에 기대다시피 널브러져 창밖 풍경을 보며 빨리 집에 닿기를 소원하던 중

내 눈에 이상한 게 잡혔다.

'경품음모권을 증정합니다'

경품을 타기 위해 무슨 음모를 꾸밀 권리를 주겠다는 거야?

십년 전엔 버젓이 00 백화점이라고 불리던 그 자리에 지금은 쇼핑센터가 들어섰지만

그래도 번듯한 사거리 중앙에 자리잡은 5층짜리 건물.

그 한가운에 아주 커다랗게 현수막을 걸어서 사람들 눈을 붙잡아놓고'경품음모권'을 준댄다.

물론 경품음모권이 경품응모권인 줄은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겠지만

이제 막 한글을 깨우쳐가는 아이들과 천지 분간 못하는 어른들에겐 응모권은 음모권이 되는 것이다.

영어교육 운운하지 말고 저런 것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한테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나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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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대서 전철이 오길 기다리는 그 짧은 몇 분이 한 시간인 양 길게 느껴졌는데

어제는 마침 포천에 사는 친구가 올라온다는 소식에 다른 때보다 일찍 인천행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처럼 들를 일이 없는 부개역은 어쩌다 거기 서게 된 내가 낯설다는 듯 바람을 보내 나를 이리저리 휘몰아대고

거기다 직행이 서지 않는다는 알림 표시로 한 쪽엔 쇠사슬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어 스산함도 배가 되었는데

바람을 피해 눈동자마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동안 내 눈에 뜨인 건 바로 장애인을 위한 도움 시설이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채 사람들이 탄 것을 볼 때마다 기우뚱거리며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지나가는 사람들 눈요깃감이 되는 게 미안스럽기도 하고, 너무 느려 저렇게 가다가 급한 사람은 늦고 말리라 생각했던.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보고 있는 사이

근육이 불룩불룩하지는 않아도 깡마른 몸매에 강단이 있어 뵈는 인력거꾼이 떠올랐다.

두 발만 의지한 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던 그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보였다.

다른 사람이 불러주길 기다리며 잠시 땀을 들이고 있지만 그사이 자동차들이 늘어

인력거를 찾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어도 그걸 놓치 못하던 사람들.

위험하다는 보고가 수십 차례 있었고, 실제 사고 현장을 보기도 했지만 왠지 엘리베이터나 에스칼레이터보다

정이 가는 저 놈.

이제 역구내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있으니 조만간 저것도 함께 철거되겠지.

멀쩡한 두 다리로도 왠지 그냥 한 번 타보고 싶었다.

그동안 수고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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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하나를 가운데 두고 바라본 바다는 좋았다.

칼바람이 옷깃 사이를 마구 헤집으며 들어오겠다고 성화를 부리다 안 되니 눈으로, 손으로, 맨 얼굴을 향해 돌진한다.

이럴 때 창 넓은 찻집이 많은 월미도는  바다 구경하기엔 최적이다.

무한정 리필이 되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노을이 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낮에 보는 바다는 동해 바다 같지 않아서 옥빛도 아니고 푸른빛도 아닌 누르스름한 색이 황하를 떠올리게 하지만

노을이 질 무렵이면 인천바다도 먹색으로, 연보랏빛으로, 붉은 기운 도는 은빛으로 황홀하게 빛날 줄 안다.

 



 

이럴 즈음 내 마음의 체 질은 시작된다.

성냄과 우울함과 기분 나쁨과 의기소침함 따위

있어봐야 하나 소용 닿지 않는 것들을 꺼내 체를 치면 굵은 틈새로 모두 다 빠져나가고

따뜻한 기운만이 희미하게 가슴 밑바닥에 고이는 걸 느끼게 된다.

몇 잔이고 마셔댄 커피 기운으로 화장실이라도 한 번 다녀온다면 금상첨화다.

마음과 몸의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간 상태이므로.

 

자꾸 일렁이는 마음을 다독여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왔으니  또 몇 달은 즐거이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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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잠들어버리는 버릇이 있는 내게 일요일은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참 좋은 날이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차이나타운을 돌아 월미도 바닷 바람을 쐬고,

다시 부천으로 가서 교수님과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회로 저녁까지 거하게 먹은 후

온 몸에 남아 도는 알콜 기운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일어나 맨 얼굴로 가면 또 혼날까 저어하여

대충 찍어바르고 아침 찬 바람을 휘적휘적 주물러가며 엄마네 집으로 가 방바닥에 앉은 게 9시 30분.

이 시각이면 정말 최고로 일찍 준비한 셈이 된다.

그래도 얼굴이 부석부석해보였는지 정곡을 찌르는 엄마의 한 마디.

"너, 어제도 술 마셨냐?"

에고..아시면서..뭘.

 

아버지는 일찌감치 상 앞에 만두피  미는 기계를 붙들고 씨름중이셨고

나보다 항상 먼저 도착하는 막내 동생이 아는 체를 하는 옆으로 보이는 반죽 덩어리들과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통으로 하나 가득.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미 덜어 놓은 그릇 두 개에 꽉 찬 만두 속.

"이번엔 조금만 했다. 밀가루 8kg 밖에 안 했으니까 엄살 떨지말어"

윽.

만두라고는 잘 모르고 자라신 충청도 아줌마 우리 엄마는 이북 태생이신 울 아버지가 만두를 즐겨하신다는

그 이유만으로 매번 만두를 이리 만드신다. 사실, 나는 만두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만두를 만드는 날 하루 이외엔 거의 먹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먹지도 않을 만두를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늘 불만인 내 입을 막기 위한 엄마의 선제공격인 셈이다.

며느리 없는 게 다행이라니까. 불쌍한 올케 구제했다. 우리가..낄낄.

매번 이렇게 수다를 떨면서 만들다보면 점심 잠깐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오후 4시까지 앉아서 만들어야

그 작업이 끝이 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큰 동생이 일하다 말고 회사 일로 불려나가고

그나마 만두피를 제공하시던 울 아버지도 점심 약속에 불려나가시고 나니 일꾼들이 줄어들어 일은 더욱 더딜밖에.

입 큰 사람은 한 입에도 들어갈 만큼 작은 만두는 이북 만두가 아니라고 우리가 수차례 건의를 해도

울 엄마의 작은 만두 사랑은 여념이 없다.

기를 쓰고 만들어서 뒷설거지까지 끝내놓으니 5시. 어깨가 욱신거리고 허리도 아파온다.

나는 먹지도 않는 만두지만 그래도 울 아들 맛있다고 먹어주고, 울 아버지 기쁘게 드시니

그래.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아이고..허리야, 어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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