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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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어공주>..

공주님들이 넘쳐난다.

예쁘고 상냥하고 마음씨 착한 공주와 잘생기고 착한 왕자가 만나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 이야기는 정말이지 많기도 하다.

돈 많은 여자 만나서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남자들 만큼이나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여자들도 많다.

작가는 신데렐라 컴플렉스 운운하며 여자들이 그런 욕망을 가지는 것이

마치 제대로 번역하지 않은 동화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화 속 이야기와 비슷한 실제 사건이 종종 일어날 뿐이지 ,

그런 동화를 어릴 때부터 신물 나게 읽어온 탓으로 여자들이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작가도 상징을 이야기했지만 '백마 탄 왕자'는 상징일 뿐이다.

나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아'라고 했을 때 '어'라고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백마 탄 왕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언어를 번역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재투성이'를 신데렐라로,

결혼잔치를 무도회라고 고쳤다고 해서 이야기의 흐름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물론 서양에서 '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일은 중요하다.

'옷'과 '결혼 잔치' '신발'이 가진 의미를 파악해보는 일도 필요하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동화, 아니 작가 주장대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각자 필요한 대로 해석을 한다.

의미부여를 할 수는 있지만 진짜 동화니 가짜 동화니 따질 필요가 있을까?

그냥 다른 사람의 독특한 견해를 들어본 것으로 끝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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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맞다와 무답이 담쟁이 문고
최성각 지음, 이상훈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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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나는 별로 인연이 없다.

어릴 때는 내 의지가 아닌 아버지 의지로 개를 키우긴 했으되 냄새와 털 날림으로 늘 못마땅해해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멀찌감치 떨어져 냄새와 부유물들로 날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만 예뻐하니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이런 걸 동물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거위를 기르고 싶어졌다.

내가 뭐라고 물어보면 맞다고 괙괙거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내 등을 놀자고 부리로 쿡 찧어보는,

몇 시간이고 목욕을 해서 하얀 털을 완벽하게 다듬고, 뒤뚱거리지 않는 진득한 폼으로 선비처럼 걷는,

생각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낯선 이가 나타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40년의 수명을 갖고 있다는 거위.

아름답고 기품이 있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지은이는 강원도에서 '풀꽃평화연구소'를 차려놓았는데 같이 살기를 원치 않았던 뱀들로 골치아프던 차에

시인 선배로부터 거위를 기르라는 충고를 듣는다. 지금은 잊혀진 동물, 거위.

부화장에서 어렵게 새끼 두 마리를 받아 돌아오는 길, 같은 연구소에 있는 왕풀님과 새만금 이야기를 하는데

거위 한 마리가 대답이라도 하듯 괙괙! 한 마리는 묵묵부답인 상태인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대답을 한 수컷 거위는 맞다, 조용한 놈은 암놈으로 무답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이름도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지어놓으셨을까.

이름 예쁘기로는 같은 연구소 활동을 하시는 '왕풀'이나 지은이를 지칭하는 '그래풀'도 만만치 않다.

생명을 흠집내지 않고 빌려다 쓴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이름들이다.

연구소에 오게 된 맞다와 무답이를 보살펴주고 그들에게 위안을 받고 기쁨을 발견하는 기록이 이 책이다.

'우리 아이가 첫 발을 떼었어요, 말을 알아듣고 방긋 웃어요.

몸무게가 3kg이 늘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모습이 너무 뿌듯해요. '

아이를 키우는 부모 심정으로 육아일기를 쓰듯 격정적인 기쁨을 억누르면서 쓴 기록들이다.

생태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지은이도 밝혔듯 거위를 키우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백하게 그려내어

수필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것 같지만 한 편의 따뜻한 동화 같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막 쏟아진 따끈따끈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연구소 식구들이 들쥐가 거위들의 먹이를 훔쳐 먹는 걸 막기 위한 회의를 진지하게 할 때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그 분들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어른들에게 이런 순수함을 느낀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한 어른들에게 위안을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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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자아를 찾아가는 빛
미야타 미쓰오 지음, 양현혜 옮김 / 사계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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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책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비평서답지 않게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지?' 하는 물음이 다시 남는다.

작가는 동화 속에 녹아 있는 기독교적 사상을 고찰하는데 심취했지만

그렇게도 읽을 수는 있겠구나 하는 끄덕임 뿐이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건

지나치게 교훈을 집어 넣으려고 노력하는 동화를 질색하는 이유와 같다.

 

우리는 일상에 매몰되는 안일한 졸음 사태와 무관심에서 탈출하여

늘 새롭게 길을 떠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동화는 신앙의 희망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화는 우리가 '선한 분에게 신비롭게 보호되어' 살고 있음을

비유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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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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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인 박기범이 쓴 이 글은 엄마와 '내'가 쓰는 일기다.

한 달 가량의 일을 담고 있는데 하루치 일기가 서너 장씩 넘어가기도 한다.

한글을 모르는 엄마가 한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나는 그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매일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집안 일을 아주 자세히 그리고 있는데

감정이나 사실 부분에서 조금의 과장도 보이지 않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엄마의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있어 보통의 경우 숨기고 싶을 법한

부끄럽거나 아픈 이야기들도 전혀 빼놓지 않는 것에 놀랐다.

그야말로 일기에 충실한 글이다. 남에게 보여줄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그런 일기.

자기 성찰이 되는 그런 일기이다.

일기를 한동안 쓰지 않는 내게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더불어, 누구를 가르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국어에 관련한 경우는 더욱

이 사람이 하는 말에 귀기울여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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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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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

 

이 시가 책의 머리를 장식하는 이유를 다 읽고 난 후에야 알았다.
그리움과 우울, 가난과 쓸쓸함, 다정함이 온통 짓누르고 있는 시인이 바로 함민복이라는 사실을....... 
온전한 집 한 칸 없이 가난한 어머니와 살아가는 시인이지만 그의 언어는 누구보다도 빛난다.

가난하지만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시인 때문에 읽는 동안 내가 더 불편했지만

그로 인해서 그를 더 사랑하게 됐다. 

요즘 들어 부쩍 엄마가 나이 드심을 깨닫게 된다. 매사에 짜증이 늘어 자식들에게 화를 그대로 내어 보이시는 엄마가 미워 한동안 뵙기도 꺼려했다가 나는 이글을 보고 울고 말았다.

집 떠나는 날 어머니는 염색을 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께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자식들이 더 자주 찾아뵙지 않겠냐고 했다. 어머니는 묵묵부답 염색만 하시다가 선문답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지셨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염색을 한다.” 
 나는 단단히 맘먹었다. 이번 기회에 위장병도 고치고 심기일전하여 좋은 글도 많이 쓰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이곳 암자로 오기 위해 집을 떠나오던 날, 나는 밥 속에서 어머니가 빠뜨린 머리카락 한 올을 골라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차마 말씀하시지 않은 마음 한 자락을 읽었다.
“네 밥그릇에서 내 흰 머리카락 나오면 네 목이 멜까봐......”

그들이 어렸을 때 한없이 베풀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작은 일 하나에도 뾰로통하여 도무지 풀릴 줄 모르는 좁디좁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그랬고 다른 이들도 별 다르지 않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던 내게 일침을 가한 이 사람.

이 책은 산문집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시집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산문이 시처럼 읽히기는 또 처음이다.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읽듯 한 편 한 편을 정성들여 읽었다.

공들인 것보다 더 크게 내게 다가온 ‘살아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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