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맞다와 무답이 담쟁이 문고
최성각 지음, 이상훈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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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물과 나는 별로 인연이 없다.

어릴 때는 내 의지가 아닌 아버지 의지로 개를 키우긴 했으되 냄새와 털 날림으로 늘 못마땅해해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멀찌감치 떨어져 냄새와 부유물들로 날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만 예뻐하니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이런 걸 동물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거위를 기르고 싶어졌다.

내가 뭐라고 물어보면 맞다고 괙괙거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내 등을 놀자고 부리로 쿡 찧어보는,

몇 시간이고 목욕을 해서 하얀 털을 완벽하게 다듬고, 뒤뚱거리지 않는 진득한 폼으로 선비처럼 걷는,

생각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낯선 이가 나타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40년의 수명을 갖고 있다는 거위.

아름답고 기품이 있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지은이는 강원도에서 '풀꽃평화연구소'를 차려놓았는데 같이 살기를 원치 않았던 뱀들로 골치아프던 차에

시인 선배로부터 거위를 기르라는 충고를 듣는다. 지금은 잊혀진 동물, 거위.

부화장에서 어렵게 새끼 두 마리를 받아 돌아오는 길, 같은 연구소에 있는 왕풀님과 새만금 이야기를 하는데

거위 한 마리가 대답이라도 하듯 괙괙! 한 마리는 묵묵부답인 상태인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대답을 한 수컷 거위는 맞다, 조용한 놈은 암놈으로 무답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이름도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지어놓으셨을까.

이름 예쁘기로는 같은 연구소 활동을 하시는 '왕풀'이나 지은이를 지칭하는 '그래풀'도 만만치 않다.

생명을 흠집내지 않고 빌려다 쓴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이름들이다.

연구소에 오게 된 맞다와 무답이를 보살펴주고 그들에게 위안을 받고 기쁨을 발견하는 기록이 이 책이다.

'우리 아이가 첫 발을 떼었어요, 말을 알아듣고 방긋 웃어요.

몸무게가 3kg이 늘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모습이 너무 뿌듯해요. '

아이를 키우는 부모 심정으로 육아일기를 쓰듯 격정적인 기쁨을 억누르면서 쓴 기록들이다.

생태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지은이도 밝혔듯 거위를 키우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백하게 그려내어

수필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것 같지만 한 편의 따뜻한 동화 같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막 쏟아진 따끈따끈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연구소 식구들이 들쥐가 거위들의 먹이를 훔쳐 먹는 걸 막기 위한 회의를 진지하게 할 때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그 분들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어른들에게 이런 순수함을 느낀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한 어른들에게 위안을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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