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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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은 잡지처럼 생긴 표지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세상에, 무명 철학자의 행복론이라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이런 표지를 보고 누가 책을 고를 수 있단 말인지!)

책은 정말정말정말 좋았다.

 전시륜.

이 땅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다 1998년에 돌아셨는데 최성각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에서 혹해서

반신반의하며 읽었으나 책장을 다 덮은 다음에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할 말을 다 할 줄 아는 용기와 더불어 연애편지만을 주고받은 끝에 결혼을 할 정도인 대단한 필력과

5분에 한 번씩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유머,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솔직함을 가진 드물게 매력적인 분이다.

 평생 모국어로 된 한 권의 수필집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던 그는 정작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걸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처럼 기분이 좋아진 독자들이 많다는 걸 알면 행복하지 않으실까?

 

 이야기 하나 하나가 다 좋았지만 그가 미리 써두었던 유서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굉장히 긴 유서였는데 아내 천건희 씨에게는 자신이 죽으면 재혼하라고 권하면서

'젊었을 땐 성행위가 있어야 소화가 잘 되듯이 노년에도 서로 기대고 의지할 반려자가 필요합니다.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깔깔 껄껄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오.

내가 코를 골 때마다 당신에게 두통이 온다니까먼저 코를 고느냐고 슬쩍 물어보십시오.  

오비드가 쓴 <연애술법 The Art Of Love>이라는 책은 남편을 낚는 온갖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제발 그 책을 한 번 읽으십시오.'라고 썼으며

 

아이들 앞으로 남긴 글 중에서

'너희들은 모두 그 어느 날 결혼하기를 원하겠지. 악덕한 부인과 결혼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후회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권장하고 싶다.

착한 부인을 만나면 당신은 행복할 것이요, 나같이 악덕한 부인을 만나면 당신은 철학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동감한다. 그러나 오직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 결혼하지는 말기 바란다.'

'나의 유람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참으로 이 유람을 즐겼다. 배 안에서 재미있는 사람들을

여럿 사귀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천건희 씨, 데니스, 데이비드, 셀리나였다.

이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여러분을 상면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데 대해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  끝까지 즐거운 유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고 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나도 참 행복한 유람을 했노라고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행복한 삶은 단순한 삶이다. 주어진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알고

이를 추종한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로 마무리 지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쓴 책대로 따라 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의 행복론이 모든 사람에게 다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행복한 삶은 단순한 삶이다'라는 말을 나도 요즘 체감하며 산다.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살 예정이다.

 내 인생에 전시륜이라는 철학자 한 명을 만난 것에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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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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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최성각.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다.

엽편 소설의 경쾌하고 짜릿한 맛을 알게 해준 <택시 드라이버>나

거위 두 마리와 함께 하는 멋진 감동을 그대로 전해 준 <거위, 맞다와 무답이>로 팬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가 독서잡설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했다. 표지 사진이 참 인상적이다.

독서란 이렇게 편안한 자세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온 몸으로 말하는 사진.

 

서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 치고 재미있는 게 드문데 이 책은 술술 잘도 읽힌다.

글이 워낙 맛나기도 하지만 그의 추억을 함께 하고 있으니 내가 개인적으로 참 친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절망이 나를 지배했다.

그가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이야기하는 책들 중에 읽은 거라곤 딱 6권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으면서 산 거냐!

그러나, 모든 것에 후회는 할 수 있어도 때늦은 시작이란 건 없다고 믿는 요즈음의 나는 얼른 절망을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즐거움을 넣어두었다. 장바구니에 쌓이는 책도 더불어 많아진 건 물론이다.

독서라는 건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한 권을 읽으면서 새로운 가지를 뻗쳐 다른 책으로 영역을 넓히는 재미가 있는 것 말이다.

 

뒷부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암울해서 돌을 매달고 걷는 것처럼 무거웠지만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해서 외면하고 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만든 환경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부록에 실린 '우리 시대 환경 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 을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읽고 다른 이들에게 권하다보면 나서서 환경운동을 할 수는 없다 쳐도 인식이 바뀌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6명만 건너면 다들 아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각자 한 명씩에게 환경에 대한 좋은 책 한 권만 건네도

무려 6명이나  그 책을 읽는 셈이니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쓰여진 문학 에세이를 읽는 것 같다. 더럽고 냄새나는 산업문명에 오염된 하늘 밑에 벌레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한 바가지 석간수 같은 글들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막막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하늘 밑에 벌레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중략)

'환경운동을 하는 글쟁이'라고 스스로 낮추고 있지만 최성각은 사상가이다.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사상가인 것이다.

소설가 김성동이 쓴 넘치는 추천사에 작가는 기겁을 했다지만 나도 100% 공감한다.

 

첫 번째 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이 도착했다.

이보 안드리치<드리나 강의 다리>

디 브라운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전시륜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이 책을 읽고난 뒤 작가가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나는 그와 먼 거리를 떨어져 앉아도 독서토론을 하는 느낌이 들 것만 같다.

벌써부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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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7
황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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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줍지 않은 시를 쓸 때가 떠오른다.

자아도취에 빠져 이렇게 멋진 시를 알아주지는 못할 망정 혹평을 해대는 친구들을 참 많이도 미워했었다.

그러니 그들이 해주는 말 하나하나에 가시를 세워 막기만 할 뿐 받아들이지 못한 내 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이후로 시를 쓰는 손을 놓아버렸으니 손해만 잔뜩 보고 가게 문을 닫은 셈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게 아닌지, 내 생각도 조금씩 어른스러워진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도 하는 지라 지금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편안한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문닫은 시 대신에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동화가 소설이나 시보다 쉽다고 생각한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라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된다.

 

어린이 책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동경하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과연 어린이를 위한 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어린이 책은 정말 어린이를 위한 것인가.

얼마나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른들의 시각을 제대로 배제했나.

등등의 물음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많이 읽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하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지금 이 땅위에서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고 있는 기성작가나

이제 막 문단을 두드리려는 신인 작가들 모두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작가의 생각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읽어내려가는 내내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년 소설에는 고민하고 방황하던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화해 무드에 접어들며 마무리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인다.(중략)

성급한 깨달음보다는 치열한 고뇌의 몸부림을, 섣부른 현실의 변화보다는 현실의 질곡마저 수용하는 자세를 그려 내는 것이

문학적 진실성에 접근하는 길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소설은 성급하게 해피 엔딩으로 결말짓기보다는

자아와 세계의 부딪침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청소년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33쪽)

 

국내 판타지동화 중에는 환상 세계의 내적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한 작품이 많아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54쪽)

환상 세계의 형상화에 있어서 현실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일성이다.

여기서 통일성은 작품의 배경에서부터 정서적인 분위기까지 총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56쪽)

창작방법론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판타지의 재료가 되는 신화, 전설, 민담의 발굴 등 판타지의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 또한 내면의 문학적 욕구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류에 부응하기 위해 

성급하게 작품을 써내기보다는 환상 세계의 구상에 체계를 다지고 이야기를 궁글리는 숙성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67쪽)

 

현실주의 동화의 또 다른 과제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익숙한 전개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동화가 참신함을 구현하지 못할 경우, 자칫 비슷한 갈등 양상에 소재만 변형되는 지루한 변주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1쪽)

 

소설화 경향을 나타내는 몇몇 동화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작중의 어린이가 설정만 어린이일 뿐

어른의 의식 구조와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75쪽) 단순하고 명징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어린이의 내면을

복잡 미묘하고 중층적인 특징을 지닌 성인의 내면으로 그려 내는 것은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고 문학적 진실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79쪽)

 

국내 현실주의 동화는 현재 '현실 속 어린이'에는 접근하고 있으나, '어린이 속의 현실'을 구현해 내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 속의 어린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린이 속의 현실'까지 담아낼 수 있을 때 동화의 리얼리티는 높이지고 감동은 커질 것이다 (84쪽)

 

우리나라 동화는 외국 동화에 비해 진지하고 무거운 경향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으나

진지한 주제 의식에 대한 작가들의 의무감 내지 중압감이 한몫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121쪽)

 

서점에 가보면 아이들이 쭈그려 앉아서 읽고 있는 것은  만화가 90%.

매일매일 좋은 책이라고 만들어내지만 왜 아이들은 동화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신경을 건드리는 만화에만 매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만화와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동화책과의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볼멘 소리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대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은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에

어른들만 좋아하는 '좋은 책'이 아닌 모두가 좋아하는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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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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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즘엔 스스로 10원 한 장 벌어보지 않았을 어린 친구들까지도 때를 가리지 않고 필리핀이나 호주, 싱가포르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가는 판인데 나는 여권도 없으니 대단한 애국자인 셈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느라 돈을 뿌리고 다니지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그런 내게 애국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빌 브라이슨!

 

내가 여행기를 즐겁게 읽었던 것은 아이들의 솔직한 글이 빛났던 <솔빛별 세계 여행기> 딱 한 권이었고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건 왠지 좀 배도 아프고 해서

앞으로 남의 여행기 따위는 읽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모임에서 이 책을 다루겠다는 공지를 보고

덜컥 장바구니에 집어 넣게 되었다. 바구니에 있던 책들을 몽땅 샀음은 물론이지만 이 책을 읽은 건

모임이 끝난 다음이니 제대로 토론도 못 해보고 책은 책대로 묵힐 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운이 억세게 좋았는지 출근길에 나가는 내 손에 잡혔고 미용실에서 파마약 냄새에 취한 채

빌 브라이슨과 함께 낄낄거렸다. 오오..진정 유머가 넘치는 작가란 말이다.

 

나는 의사에게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말 따분한 곳에 가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이라도 받은 환자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 오로라를 기다리던 함메르페스트에서 지루한 일상중에-

너무 뻔한 가짜 콧수염을 달고서 엉덩이에 고챙이라도 꽂혔는데 그로 인해 연기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각오라도 한 듯이 점잔을 빼며 걸어다니는 촌스러운 드라마였다.

- 역시 함메르페스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한 겨울에 함메르페스트를 간 것을 시작으로 오슬로, 파리를 거쳐 함부르크, 로마, 스위스,

이스탄불까지 유럽 곳곳을 옆집 구경가듯 다녀간 작가의 신나는 여행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탄탄한 번역도 한 몫을 했을 테니 번역을 한 권상미 선생에게도 감사하다.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개발된 쌍방향통역기

하나만 가지면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쌍방향 통역기의 성능을 시험해본 건 아니고 광고를 보면 그럴 것 같다는 추측이다.

설마하니 과대광고는 아니겠지?)

영어 하나만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닌 빌 브라이슨도 있는데 까짓 거 뭐 해보지 뭐!

문제는 빌 브라이슨이 다녀간 유럽 어디에도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1990년대 여행기라서 지금하고는 많이 다를 테지만 빌 브라이슨에게 유럽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뒤죽박죽 성처럼 보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은 못 찾았지만 나는 기꺼이 애국자의 길을 버리기 위해

조만간 여권을 만들러 구청에 뛰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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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 개정증보판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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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하는 습관을 많이 고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문학쪽으로 기우는 저울을 바로 잡을 추들이 필요하다.

그런 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여러 명이지만 이번에 새롭게 참여한 이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제자 Y다.

과학을 그 자체로 좋아하는 그 아이는 꿈이 정재승처럼 되는 거라고 했다.

과학을 연구하면서 글도 이렇게 멋지게 쓰는 사람이 되는 것.

일찌감치 자기 길을 발견한 그 애가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긴 하지만

벌써부터 과학고를 가기 위해 여기저기 학원을 가느라 보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그 녀석 얼굴을 보면 같은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꼭 과학고등학교를 가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애 부모님이 결정한 일이고

그 아이 역시 그 결정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므로 나는 격려만 해 줄 뿐이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길 바란다. Y!

 

Y 덕분에 요새 내가 읽은 책은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1>,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2>, 그리고 이 책이다.

하리하라 시리즈를 쓰고 있는 이은희 씨도 물론 과학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정재승은 한 가지 매력이 더 있는 듯하다. 웃음코드를 살릴 줄 아는 능력이 그것인데 두껍고 무거운 이 책을

전철에서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라서 옆에서 힐끗 나를 본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대충 짐작해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과학적 오류를 짚어나가고 있는데 딱딱한 공식이나 이론들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 눈높이에서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으니 읽고나서 모든 걸 다 기억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뭐, 물론 이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볼 필요는 없다.

간이 덜 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이건 순전히 입문서 수준으로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할 달콤한 당근 조림인 것이다.

 

어떤 것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과학적인 오류라도 영화가 재미있게 만들어졌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내가 과학적인 오류를 짚어낼 수가 있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영화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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