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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현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많이 책을 읽은 판사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 형태의 글을 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개인주의자라는 제목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재천 교수, 김민식 PD, 이국종 교수. 이분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개인적으로 제가 멘토로 삼고 싶은 분들입니다. 오로지 혼자만의 바람이죠. 이분들은 모두 책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하셨습니다. 중요한 마지막 공통점은 세상의 부조리, 사회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하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곤충학자, 관찰 학자 최재천 교수는 4대강 운하를 반대하는데 앞장 섰다가 지난 정권에서 탄압을 받았습니다. 김민식 PD는 MBC 사장 퇴진을 위해 노력하다가 한직으로 쫓겨났던 분입니다.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 외상 센터에 근무하시면서 응급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분입니다. 이분들은 글도 잘 쓰셔서 이분들의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여기에 한 명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문유석 판사입니다.
교수, PD, 박사, 판사. 어찌 보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기득권 계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먹고사는데 별로 힘들지 않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조그만 힘이라도 사회의 발전에 보태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을 하고, 글을 씁니다. 폭력적인 투쟁이나 날세운 비판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토론의 장에 자신의 의견을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이 사회는 제대로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 가지 주제를 던지고, 본인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이런 주제들은 한 번쯤 누구나 생각해 봤을 만한 것들입니다. 가볍게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생각을 하거나 생활에 적용해 보거나 실천해 보거나 책으로만 끝나지 않고, 책 밖으로 나와서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부장판사로서 책을 쓴다는 것에 많은 부담을 가졌을 거 같습니다.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 관료적인 조직인 법조계에 몸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며, 이 사회에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괜찮을까요? 어느 정도 비난과 질책을 감수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밝히면서 글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집단주의의 반대입니다. 개인주의는 근대화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 주위를 따뜻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주의가 정의가 이렇다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개인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저자의 생각이 많습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각양각색의 포스트잇이 책에 꽂혀 있네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 봐 밥을 굶고 지방 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p.32 ~ p.33)
연말마다 임원 승진 발표를 합니다. 한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임원이 되면 많은 것이 바뀝니다. 직원으로 퇴직하고, 임원으로 새로 계약을 맺습니다. 일종의 계약직인데, 회사 차도 주고, 비서도 생기고, 개인 냉장고와 TV가 설치됩니다. 회사 일에 좀 더 책임이 많아지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업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임원 승진 발표 후 한동안 기분이 착잡하고, 안 좋습니다. 저 또한 자승자박하고 있다는 거겠죠.
유명한 벽돌공 이야기에 생업, 직업, 천직을 나누는 기준이 나옵니다. 행복을 위해서 꼭 천직을 가져야만 하는 걸까요? 성공하기 위한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꼭 천직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은 안 듭니다.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가능한 직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취미 활동,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백댄서가 되어 평생 춤만 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동호회 활동으로 주말에 홍대 앞에 나가 춤을 춰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재능과 열망의 크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면 그뿐이다. 이런 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면 행복할 기회가 늘어나고 소소한 행복의 플랜 B, 플랜 C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과학에 따라. (p.54 ~ p.55)
<오늘부터 미니멀 라이프>라는 책을 읽고, 대대적인 방 정리를 했습니다. 많은 물품을 버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나중에 찾기 쉽도록 가지런하게 수납했습니다. 그리고, 더 넒어 지고, 숨통이 트인 방 한가운데 앉아서 따뜻한 커피와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슈베르트 현악 4중주 <로자문데> 음악을 들었습니다. 소소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취업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 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박탈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며 자신은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에 그들보다는 낫다고 구분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십 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그 누구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기도 하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선택한다. (p,136)
물론, 모든 20대가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각종 차별에 찬성하는 젊은이들도 많다는 사실 또한 현실입니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p.136)
당신께만 특별히 알려주는 고급 정보라며 속삭이는 귓속말에 일개미들은 나비가 되어 비상할 것을 꿈꾸며 눈이 먼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한사코 권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남들이 한사코 감추고 있는 게 세상의 비정한 이치다. 이런 세상에서 불에 홀려 다가가는 부나비들을 어리석다 비웃고만 있으면 될까. 불에 덮개를 씌워 더이상 타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p.140)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의 두 측면을 있었던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얼마든지 지금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p.201)
명절 때마다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지만, 꼭 한 번씩 티격태격을 합니다. 아버지는 수구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유독 북한 문제에 대해서 강경합니다. 어렸을 때 고생했던 기억을 가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일이므로, 직접 겪으신 일이 없기 때문이시겠죠. 친일파 행동을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서 제가 비난을 해도 별로 대응을 안 하시지만, 북한과 비무장지대 도로 개설을 대해서 전쟁 나면 북한에게 이용 당할까 봐 반대를 하십니다. 아버지의 생각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니깐요.
인간 세상의 문제는 참으로 복잡하여 일도양단에 흑백을 가릴 수 없는 면이 많다. 인터넷을 셔핑하다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다들 참 명쾌한 정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결국 우리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문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귀한 것 같다.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이야기하면, "간단히 말해서 누구 잘못이란 말이냐! 너 이런 소리하는 거 보니까 저쪽이지!"라고 윽박지르는 목소리가 당장 튀어 나온다. (p.228 ~ p.229)
잠시 저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금을 많이 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는 세금으로 보도 블록을 자꾸 파헤치지 말고, 운하 같은 거 만든다고 생쇼 하지 말고, 소방관 처우 개선에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당장 통일은 반대합니다. 하지만, 북한과 경제적 교역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대동강, 금강산을 구경 가고 싶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교육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카이 캐슬 같은 드라마가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보다 미국을 좋아합니다. 일본을 제일 싫어합니다. 국민연금 혜택을 받고 싶습니다. 민노총과 진보 정당을 싫어합니다.
저는 대체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혹은 좌파일까요? 우파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구분이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제 인간에 대한 폭력을 넘어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혹자들은 이를 비현실적인 호들갑이라고 여기지만,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범위를 나, 가족, 부족, 계급, 성, 인종, 국적의 범위를 넘어 계속 넓혀온 역사가 바로 인간이 폭력적인 본성과 싸워온 과정이다. 어느 시대에나 타자의 고통에 대해 가장 예민한 이들, 가장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길거리에서 타살당할 염려 없이 일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잠들지 않게 서로 깨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p.241)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잘하든 못하든 뭔가를 책임지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고 못한 부분은 감싸주고 격려하는 문화가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무엇을 시도하고 실질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남의 잘잘못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창작자보다 평론가가 많다고나 할까. 사실 비평할 논리야 얼마나 많은가. 미봉책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해결이라고 볼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인데 현상만 일부 건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름 노력은 한 것 같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다..... 노력이라도 해보려는 남을 냉소함으로써 그것도 하지 않는 비루한 자신을 위안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다 쇼일 뿐이라며. (p.267 ~ p.268)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삷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p.279)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논리적이면서 이해하기에 쉬운 글을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문득 글쓰기 이전에 생각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글 쓰고. 일상의 습관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2019.3.2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