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에 대해 과학적, 진화론적으로 접근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제가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그리고 행복은 생각의 문제라고, 또는 자아실현이 궁극의 인생 목표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하는 이정표처럼 다가온 책입니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어쩌면 제가 제일 늦게 읽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책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나 사례 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충분한 학식과 경험이 없는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실이 아닌 생각을 바로잡아 주면서 시작합니다. 단지 진화를 했을 뿐이고, 진화하기 위해서 생존과 번식이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생존과 번식을 달성하기 위해 동물의 모든 특성은 그에 맞게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뇌의 원래 용도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지 이차 방정식을 푸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이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 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p.47)


모든 동물의 뇌가 쾌 혹은 불쾌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 쾌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데, 왜 이걸 만들어 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생존과 번식을 잘하기 위해, 생존에 유익한 활동이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에 계속 매진하라고 알리는 것이 쾌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박, 마약, 성 도착증 등이 위험한 것이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뇌가 고장 나서 잘못된 쾌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불쾌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쾌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쾌(행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언제 행복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를 계속 외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약한 동물이기 때문에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같이 모여 살면서 사냥도 하고, 후손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낼 때,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이성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느낄 때 이러한 행복이라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이때 행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혼자 사냥을 당하거나 굶어 죽거나 쓸쓸히 후손도 없이 고독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유전적 형질은 점차 없어졌을 것입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일에 왜 적응을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서 적응을 하는 것이 아니고, 뇌가 적응을 하라고 명령을 하고, 사람은 따를 뿐입니다. 행복이라는 도구가 자주 지속적으로 발동되어야 생존과 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었을 때의 행복이 한 달에 한 번 발동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즉,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p.123)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이라는 도구가 필요하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사람들과 함께 살 때 행복이라는 도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을 만드는 뇌를 가진 사람들이 진화하는데, 유리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유전적 특징을 바로 외향성, 사회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외향성, 사회성이 없는 사람은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저는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레고를 만들고,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때는 쾌(행복)이 안 만들어지는 것일까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혼자 하는 행위도 결국 남과 어울리기 위함이고, 이것이 결국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닐까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레고를 만들고, 사진 찍어서 올리고, 영화를 보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이런 일련의 행위가 결국 남과 어울리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누군가 댓글을 달아 주거나 누군가 동일한 영화에 대한 느낀 점을 같이 이야기할 때 행복을 느낀 것이고, 그 행복이 바로 초기화되기 때문에 다시 혼자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제가 과학적으로 검증한 내용은 아닙니다.


사람은 음식만큼 중요한 생존 자원이기에 이에 대한 감정적 반응 역시 강력하다. 그리고 음식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이 있다. 좋은 사람과 대화하고 놀고 손잡는 것만큼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지만, 역으로 사람만큼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주는 자극도 없다. 나를 배척시키고,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가장 절대적인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p.164)


사람을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주는 자극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집단주의라고 합니다. 집단주의 문화권에 있는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낮습니다. 조직을 위해서 억지로 강요하는 행위가 많을수록 사람을 꺼리게 되고, 이럴수록 행복이라는 도구를 만들어낼 기회가 점차 없어지는 것이죠.


사람 자체의 교류를 통해서 순수한 즐거움이 나와야 하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즐거움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과도한 물질주의와 과도한 타인 인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돈이 많다면, 내가 권력이 있다면, 내가 인기가 있다면, 사람 자체의 교류를 많아질 테니 행복이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이 사냥을 떠나는 사람이 언제든지 나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진다면, 그걸 과연 행복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과도한'이라는 용어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행복이라는 도구를 잘 이해하고, 잘 써야 합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오로지 남들보다 더 생존해야 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겨야 행복해 지겠지 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본질적인 행복의 용도인 사람과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개인주의는 고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고, 에스프레소를 통해서 즐거움이라는 형태로 행복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결론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행복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경험을 인위적으로 많이 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입니다. 행복은 초기화되기 때문에 강도보다는 빈도를 추구해야 합니다. 행복은 생각이 아니고, 경험입니다. 이 책에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사진 한 장과 문장 하나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p.191)


2019.3.10 Ex. Libris. HJ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