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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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독서법>에서 추천한 해외 소설 중의 하나이다. 200 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한 소설이다. 나도 읽어 보고 나니 추천을 안 할 수가 없다. 

한 남자가 있었다. 광고 회사 다니면서 능력도 있고, 외모도 멋있고, 주변에 항상 사람이 모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아지면서 몇 번의 수술을 하고, 은퇴한 후에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을 다시 돌아본다. 첫 번째 결혼했던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두 번째 결혼을 하고, 다시 아내와 한 아이를 버리고, 세 번째 결혼을 한 그는 연속되는 수술을 하면서 몸이 안 좋아지면서 결국 세 번째 아내하고도 헤어진다. 세 번째 아내는 무려 20년 넘게 차이가 났으니 누구나 예상하지 않았을까?
전반적인 소설 스토리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젊었을 때와 노년일 때 인생을 바라보는 그 남자의 생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내용은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후반부에서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잔인하리 만큼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젊었을 때 잘 나간다고 해도 영원한 것은 없고, 결국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이 온다. 
잡스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정적으로 하라는 말을 하면서 연설을 마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 남자는 은퇴 후 평소에 희망하던 그림 그리는 것에 매진을 한다. 은퇴 후 바닷가에 있는 콘도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멋있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그것은 결단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남자에게 그림을 배우던 한 여자는 척추 손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만 옆에 있어도 이 모든 것을 극복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친다. 
그 남자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두 번째 아내는 수술을 한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하지만,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바람을 피우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를 속이고, 결국 그녀와 이혼을 한다. 저자는 돈과 명예가 있으면, 더 젊은 여자를 찾으러 다니는 보통의 남자들, 외적인 환경이 아니고,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남자들을 에브리맨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탈무드>에서 말한 격언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할 때가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곧 치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세 친구가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는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했고, 두 번째 친한 친구는 아주 소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첫 번째 친구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세 번째 친구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앞의 두 친구와 만나는 바람에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장 친한 친구는 그가 죽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그의 곁 떠나버렸다. 두 번째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그의 무덤까지만 같이 가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친구는 그가 죽는 순간뿐 아니라 하느님께 인도되는 순간에도 함께 하였다."

여기에서 세 친구는 누굴까? 바로 첫 번째 친구는 돈, 두 번째 친구는 가족,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이라고 한다.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마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필립 로스가 소설 속 주인공 그 남자를 통해 말하고 싶은 아래의 내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도 전에는 혼자 있을 때면 잠시, 사라진 구성요소들이 기적적으로 돌아와 그를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의 지배를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실수로 그에게서 잘려나간 권리가 회복되어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가끔은 생각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나이가 들어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끝나는 그 시점에도 혼자만 있다는 것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첫 장면은 묘지이다. 그 남자가 무덤에 안치될 때 그의 곁에 머무른 사람들이 회상을 하면서 시작한다. 인생의 마지막 날. 누가 내 옆에 있을까?


2017.09.30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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