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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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정명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 작가는 이외수, 공지영, 황석영, 김진명뿐이다.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한국 소설은 많이 읽어 보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 책은 전설적인 운동권 인사 최민석, 연극 연출가 이태주, 연극배우 김진아, 안기부 팀장 김기준, 안기부 관리관(이름 없음)이 등장하여 서로 속이고, 속으면서 치열하게 살아간 일대기를 보여준다. 쉽게 말하면, 안기부의 공작에 놀아난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데, 1980년대 한국에서의 자유화 투쟁과 대학로 중심의 연극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안기부가 각종 치졸한 공작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식하게 고문하는 장면보다는 잘 짜인 판을 설계해서 피해자를 한 곳으로 밀어 붙이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실제 이런 짓을 벌여 왔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리기도 했다. 
최민석을 잡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하기 위해 최민석을 잡는다는 김기준의 말에 한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를 새삼 알 수 있었다. 
왜 최민석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 없고, 그저 일을 하기 위해서 최민석이 누군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저런 생각은 사실 매일같이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회사 다니면서 이 업무를 왜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회사를 다니기 위해 이 업무를 그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사람들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안기부 사람들은 모두 잘 산다. 심지어 과거를 왜곡시켜 마치 자기가 민주주의 투사인 것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세상의 아이러니이다. 나쁜 놈은 벌을 받지 않고, 좋은 놈은 벌을 받는다. 그것도 조작된 벌을 받는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에 좋은 놈은 없어 보인다. 

연극을 잘 모르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연극 관련 이야기는 솔직하게 흥미가 없었다. 등장인물 등의 심리묘사를 위해서 연극을 하나의 도구로 등장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중에 따분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인정한다. 연극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 부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스토리에 집중해서 긴박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연극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서 맥이 풀리는 기분이 후반부에 갈수록 반복되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2017.06.2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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