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그래픽 노블 '담요'를 읽었다. 그래픽 노블은 나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처음 접한 것은 동일 작가의 '하비비'였다. 이 책을 읽고, 재미있어서 '담요'를 샀다. 

만화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내용의 깊이는 대단하다. 철학적, 종교적, 사색적인 내용과 남녀 간의 사랑 묘사 등으로 봤을 때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담요'이지만, 개인적으로 '하비비'가 더 재미있는 거 같다. '하비비'는 이슬람교 기반의 내용 전개이지만, '담요'는 기독교 기반의 내용 전개이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의 종교적 이해 수준도 꽤 높은 거 같다. 왜 책 제목이 '담요'인가는 책을 끝까지 읽어 봐야 알 수 있다. 주인공을 사랑으로 감싸 주고, 성숙함으로 이끌어 주었던 매개체 정도로 이해하면 될지 모르겠다.

기독교를 믿는 부모님, 동생과 함께 지내는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다른 내면세계와 사고를 가진 주인공은 주변에서 왕따를 당한다. 그러던 중에 방학 때 기독교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고, 그곳에서도 무시를 당하는 중에 한 여자를 만난다. 서로의 친밀했던 기억은 캠프 끝난 후에도 서로를 찾게 하고, 방학을 맞이해서 여자의 집에서 같이 보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면서 주인공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같이 옆에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의구심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어렸을 때 교회 활동을 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교회를 열심히 다닌건지 아니면, 마음속에 그분을 섬기고 싶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현실을 알고, 역사를 알면서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 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기독교라고 말한다. 누가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보면, 교회는 안 다닌다고 말한다. 신을 믿지만, 그 신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교회를 다니면, 천국을 가고, 안 다니면 천국을 갈 수 없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를 안 가면, 천국을 못 가는가? 이건 누구의 뜻인가? 신의 뜻인가? 교회의 뜻인가? 교회가 정치적인 발언과 행위를 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 질려도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서는 누가 만들었을까? 성서를 만든 의도가 있지 않을까? 그 의도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일까? 교회의 뜻일까?

나는 정답을 모른다. 아니 정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전도서 내용 중에 서로 상반된 내용이 있고, 전도서는 솔로몬 왕이 쓴 걸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사람이 솔로몬 왕 사후 600년 후에 썼던 내용이 덧붙여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의 의견에 교회 목사는  이 모든 걸 성서의 성장 과정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답변한다. 이에 주인공은 혼자 독백을 한다.


성장 과정?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성경의 구절들이 신의 입에서 곧장 나온 말씀이라 배웠다.

이렇듯 수대의 필사를 통해 수정되고, 번역을 통해 희석된 것이라면, 그 진실은 적어도 내 눈에는 퇴색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신의 말씀처럼 신성한 것을 <대량 생산한> 물질의 형태로 고정시킨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보였다.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 사람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는다. 평화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아타우알파와 잉카인들은 비무장으로 왔지만, 피사로는 미리 병력을 숨겨놓고, 기습 공격을 하여 수천 명의 잉카인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아타우알파를 잡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한 것이므로 하늘과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고, 이는 그대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까지의 야만스럽고 사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심이오. (중략)

하느님도 그대의 자만심을 꺾고 그 어떤 인디언도 기독교인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이 일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중에 더 많은 잉카인들을 학살하고, 아타우알파를 죽인다. 하느님을 알고,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려고 하면 교화를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자신을 믿지 않은 모든 이들을 무조건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고, 멸망시키라고 말했나? 아니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는가? 이게 정녕 하느님의 뜻인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을 채운 한심한 인간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알리고 싶어서 하느님을 이용한 것인가? 이쯤 되면,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이용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이제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의 내면 심리,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이나를 만나서 서로 좋아하고, 알아가고 점차 사랑에 빠지는 연애 소설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아니 왜?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결단을 내리는 주인공 때문에 내 마음도 상처를 입었다. 아닐지도. 내가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제대로 이해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의 하나처럼 이 모든 것을 전개하고, 그 이후에도 아무 설명 없이 담담하게 주인공의 생활과 심리를 묘사한다. 마치 주인공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지독한 고통과 너무 대조적이다. 

혹시 크레이그 톰슨의 그래픽 노블을 읽어 보고 싶으면, '하비비'를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담요'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종교를 대하는 다른 방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7.02.04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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