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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헐리우드 B급 영화 감성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책을 다 읽고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누른다>는 제목이 뜻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방랑자인 한 남자가 우연히 찾은 레스토랑 주인의 아내와 정분을 나눈다는 줄거리인데, 포스트맨이 이 남자를 뜻하는 것일까요? 벨을 두 번 누르는 이유는 포스트맨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일까요?
불륜 관계의 남녀가 범죄를 계획하고, 저지르는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떠나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자처럼 방랑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서 남자가 자기와 함께 정착하기를 원하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저는 대책 없는 남자를 따라가기 보다는 여자가 빨리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아니면, 남자를 설득해서 원래 있던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숨길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언가의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이러한 일로 불행에 빠지기도 합니다. 행복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만든 행복이라서 오래 가지 못할 불안감이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 머물렸습니다. 소설 속 남녀도 다툼이 많아지죠.
현실속에서 타인에게 행한 선의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내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타인에게 행하는 선의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법이라는 것이 꼭 정의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상반되는 주장과 논증의 싸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의는 뒤로 몰려 나고, 상대방의 논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일종의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게임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법정이라는 장소에서 서로 다투면서 어느 한 순간 더 이상 정의 구현은 사라지고, 논증의 싸움만이 남아 있는 경우들이 없다고, 또는 어쩌다 한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지 얼마 안되어서 이 책에서 다시 접한 법정 다툼에 대한 생각이 너무 부정적이고, 냉소적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생각일까요?
오랜만에 짧은 영화 한 편 본 듯 합니다.
2025.7.31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