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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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허무하지만, 전반적으로 몰입해서 읽었다.
하루끼는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주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능력이 있다. 현실과 내면의 세계를 넘나드는 전개에서 독자에게 혼란을 끼치지 않고, 계속 읽게 만드는 능력이 오늘날의 하루끼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으로 벽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상은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우리는 언제나 벽을 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벽, 즉 현실 세계에서의 벽은 문명의 부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철학자 강신주는 인간의 가축화가 진행되면서 문명이 도래했다고 말한다. 동물의 가축화 이후 인간이 인간을 가축화 시켰다고 한다. 즉, 지배층이 나타나면서 피지배층을 가축화 시키고, 이걸 바탕으로 경제, 정치, 종교 등 많은 영역에서 문명이 발전했다고 한다.
애초에 인류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사유 재산이 없었고, 벽이 필요 없었다. 다만, 추위를 막기 위한 구조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문명이 생기면서 사유 재산을 지켜야 하고, 다른 문명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고, 지배층의 명예와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공간상의 분리가 필요했다. 이는 공간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벽을 마주 보면, 위압감을 느낀다. 지배자가 원하는 감정이다.

사실 벽은 정신세계에서도 존재한다. 아무리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누군가와 벽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 벽의 이유가 나 자신 인지, 남 인지를 구분하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정치인의 피습을 보고, 어떤 이는 이런 짓을 저지른 범죄자가 나오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스러워하고, 어떤 이는 유명 정치인의 자작극이라고 욕을 한다. 대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간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배척한다. 그리고, 자신의 벽 안으로 들어오라고 다른 사람들을 유인하고, 자신의 벽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공격한다.
히틀러라는 한 명으로 시작된 독일 3제국이 전체 독일인들에게 벽을 만들어 유태인 학살 및 세계 대전으로 몰았다. 그리고, 이 히틀러를 선택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독일인이고, 이들은 그에 맞는 재앙을 맞이한다. 집단주의로 강화되는 벽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은 불확실한 벽을 포함하고 있다. 벽은 항상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영역을 넓히기도, 줄이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한다.
SNS, 유투브가 발전하면서 각자의 벽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을 초래했다. 각자가 원하는 소식에 빠져들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벽을 세우고, 철저히 남이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관심 있어 보이는 것을 추천해서 편리함을 제공한다고 떠들지만, 그로 인해 나의 벽은 더욱 견고해진다. 언론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벽을 만들려는 존재가 이제 소셜 미디어로 이동한 것이다. 이제 24시간 어디에서나 벽이 만들어진다.
집단 이기주의도 결국 자신들의 벽을 세우고, 넘어오지 말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안에서 살까? 아니면 실제의 세상에서 살까? 어느 곳이 가상인지 실제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어느 곳에 사는 것이 그림자인지 실체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무의미한 곳에서 무료하게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살 것인가?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현실 세계에서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벽으로 둘러싼 도시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르겠다. 명확한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몰입감을 느끼면서 약 700페이지의 책을 완독했지만, 다 읽고 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답을 찾을 때까지 하루하루 묵묵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2024.1.19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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