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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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끄기의 기술'로 유명해진 마크 맨슨의 두 번째 책이다. 원제가 'Everything is F*ucked : A Book about Hope"이다. 저자는 더 나은 것을 희망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그냥 더 나아지라고 한다. 대체 이게 뭔 말인가? 


인생에 대한 선택과 방향을 결정하는 뇌는 생각 뇌인가? 감정 뇌일까? 인간은 항상 생각과 감정이 서로 반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지식을 만드는 뇌가 운전을 담당하고,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뇌가 옆에서 계속 유혹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감정 뇌가 운전을 담당하고, 생각 뇌는 옆에서 조언을 줄 뿐 큰 힘이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사실 감정이 나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말이다.


생각 뇌는 사건 사이에 수평적 관계(동일성, 대조, 원인과 결과 등)를 만드는 반면, 감정 뇌는 계층적 관계(좋음과 나쁨, 바람직함과 그렇지 않음, 도덕적 우월함과 월등감)를 만든다. 생각 뇌는 이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각하고, 감정 뇌는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생각한다. 생각 뇌는 상황이 어떠한지를 결정하고, 감정 뇌는 상황이 어떠해야 햐는지를 결정한다. (P.86)


감정 뇌는 반증이 수두룩해도 현실을 왜곡해서 자신의 문제와 고통은 이 세상에서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라고 믿게 한다.  인간이 이런 수준의 자아도취를 붙박이로 갖춰야 하는 이유는 자아도취가 불편한 진실을 막아 주는 최종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형편없고 인생은 극도로 힘들며 예측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대충 산다. 만약 자신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거짓된 믿음, 뭔가 비범하다는 착각이 없다면, 우리는 제일 가까운 다리에서 줄지어 다이빙을 할 것이다. 이런 자아도취적 망상이 전혀 없다면,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기만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P.94)


감정이 생각보다 엄청난 힘으로 나를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고, 나를 존재시키는 것도 감정이기 때문에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가 감정을 통제하는지, 감정이 나를 통제하는지 무엇이 먼저인지 혼란스럽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아닌가? 명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는 무엇인가? 내가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닌가? 내 머리로 답을 찾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종교를 시작하는 6단계 프로그램을 알려준다. 누구나 종교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종교를 부흥시키고, 권력과 돈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종교에 쉽게 빠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어야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교회도 안 다니고, 절도 안 다니고, 사원도 안 다니는데 무슨 말일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종교는 영적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념 종교가 있고, 스포츠, 정치, 팬덤 등의 대인 관계 종교가 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이념 종교와 대인 관계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한 종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희망을 품어 보았자 결국 종교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칸트가 말한 인간성 공식은 인간의 모든 바람직한 행위를 기술하는 단 하나의 규칙이다. 인간성 공식은 희망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적인 초자연적 믿음이 전혀 없다. 인간성 공식은 정직, 용기, 겸손 등이다. 도덕적 직관이다.


칸트는 세상을 개선할 유일한 논리적 방법은 자신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장하고 더 도적으로 되는 것, 즉 매순간 자신과 타인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겠다는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정직하라. 자신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라. 책임을 회피하거나 두려움에 무릎 끓지 말라. 솔직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 종족적 충동이나 희망을 주는 속임수에 굴복하지 말라. 왜냐하면 미래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매 순간 당신이 하는 선택만이 있다. (P.221)


저자는 행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행복 추구는 자멸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잘 산다는 건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고통받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이 왠지 무슨 종교 강령같이 들리지만, 쉬운 예가 있다. 운동과 육체 노동을 통해 몸을 망가뜨리면 근육이 생기고, 골밀도가 높아지며, 혈액 순환이 잘되고, 엉덩이가 빵빵해진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고통을 피하면 몸이 약해진다. 


고통은 삶의 보편 상수이므로 고통을 통해 성장할 기회는 삶 속에 늘 있다. 고통을 마비시키지 않으면, 고통으로부터 눈길을 돌리지만 않으면 된다. 고통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고통은 모든 가치의 근원이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중요한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다. 고통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장 확고히 지키는 가치관과 믿음이 되는 도덕적 간극을 열어 준다. 어떤 목적을 위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부정하면 삶 속에서 목적을 느끼는 능력을 완전히 부정하게 된다. (P.269)


유일하게 진정한 형태의 자유, 유일하게 윤리적인 형태의 자유는 자기 제한을 거친 것이다. 이것은 삶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선택할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서 포기할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자유다. 오락은 일시적이고 쾌락은 지속되지 않는다. 다양성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하지만, 기꺼이 희생하려는 것, 기꺼이 포기하려는 것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P. 292)


결론적으로 희망을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보편 타당한 인간성을 추구하며, 고통을 담대하게 받아들어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원하는 것을 할 생각보다는 기꺼이 포기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유를 추구하라고 한다. 

희망은 꿈꾸기 어려우니 스트레스 없이 희망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이 궁금해서 이 책을 찾은 사람들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거 같다. 책장에 있는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자기 제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휴대전화, 이메일, 인스타그램을 강박적으로 확인하지 말고, 좋아하지 않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지 말고, 즐겁지 않은 파티와 행사 초대는 거절하고, 남들에게 말하기 위한 여행을 하지 말라고 한다. 더 많이 경험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강박적 행동을 탈피하라고 한다. 


복잡한 것을 다 잊고, 그냥 2가지 질문을 항상 나에게 해보면 어떨까 한다.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 하는 행동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가? 더 쉽게 말하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자가 될 것이다. 


2019.12.20 Ex. Libris. HJK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등장한 과학 혁명은 세상을 바꿔 놓았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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