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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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도서관 서고를 돌아다니는 취미를 가진 후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을 우연히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아직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책이 있고, 역시 나의 존재는 미약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학부모들에게 팔기 위해 기획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이 책이 꽂혀 있는 서고가 인문학 서고였다. 그리고, 같은 책이 4 권이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품위 있는 사람을 위한 인문학 선언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고, 인문학 공부라는 생각, 4 권이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출하기를 원했던 책인가라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넘기다 보니 중간에 그림과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만 보고 발생한 나의 오해가 창피하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라는 문자가 주는 선입견이 무섭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얼마나 많은 책을 보관함에 넣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책에 인용한 많은 책들을 알라딘에서 검색하고, 보관함에 넣을 것이다. 읽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보관함을 생각하면, 초조해진다. 보관함에는 일주일에 한 권씩 읽어도 몇 년 동안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사실 독서를 공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공부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에 도움을 주는 정도나 사소한 궁금증에서 독서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라면, 왠지 시험을 봐야 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고, 누군가에게 공부한 정도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는 무엇일까? 한 권의 책이 모두 공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공부를 하는 이유, 의미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그만 방에서 혼자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자신을 당당하게 만드는 것이 공부이고, 사회적 연대, 공동체 의식을 길러 나가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삷은 아직 더 살아야만 풀어지는 아름다운 신비'임을 깨닫게 한 것이 나에게는 공부였습니다. 어떤 제대로 된 직함도 없기에 남들 앞에서 내 소개를 하는 것이 꺼려지는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지요.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는 사람이야. 그것만으로 당당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줄 아는 용감한 나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자아의 얼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고 지켜 주고 싶은 자아였습니다. (P.346)


저자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시간표도 선생님도 없는 나만의 작은 마음의 학교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힌 배움의 기술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그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한다.


노예로 태어난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끝내 위대한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나에게 달린 것'과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국적, 부모, 인종, 외모, 평판, 재산 같은 것들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인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골몰하느라 진정 나에게 달려 있는 것에 마음 쏟을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지혜, 신념, 우정, 용기, 희망처럼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내면의 가치들입니다. (P.64)


왜 세상은 거짓된 사람들이 훨씬 자주, 그것도 화끈하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왜 세상은 위험한 진실보다는 안전한 거짓의 편에 서라고 충동질하는 것일까요? 제우스는 자신에게 복종하는 인간을 원했고, 프로메테우스는 힘들더라도 제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을 원했습니다. 제우스는 모든 독재자의 은유이며, 프로메테우스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에게조차 반항하며 묵묵히 진실을 위해 싸우는 혁명가의 은유가 아닐까요? (P.76)


오두막 한 채와 검은 빵, 물만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삶에서 위대한 사상을 길어 올린 소로의 서릿발처럼 차가운 일갈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옷장에 옷을 쌓아 놓고도 입고 나갈 옷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냉장고에 음식을 잔뜩 쟁여 놓고도 먹을 게 없다고 칭얼대는 우리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진짜 문제는 궁핍이 아니라 과잉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인터넷을 멀리하고,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찾아 떠나 보면 어떨까요? 동네 뒷산도 좋고, 봄꽃 흐드러진 명산도 좋습니다. 그곳에 우리가 버려두고 온 가장 야생적인 자아가 있습니다. (P.93)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 지 7년이 지났다. 신도시였기 때문에 주변 모든 환경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하지만,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앞에는 개천이 있고, 뒤에는 야산이 있다. 개천은 호수로 이어지고, 야산은 제법 높은 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변 걷기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되었다는데, 걷다 보니 미처 알지 못했던 장소와 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지 못했던 길을 찾는 재미도 생겼다. 자동차로 정해진 길로만 7년 동안 다녔다는 생각 때문에 걸으면서 찾아낸 새로운 길들이 너무 반가웠다. 걷기에 대한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타인의 고통](이재원 옮김)에서 손택은 매스미디어가 전시하는 천편일률적인 고통의 이미지에 길들어 버린 현대인의 무딘 감수성을 공격합니다. 현대인들은 '전쟁' 하면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투 신을 떠올리고, 기아 하면 에티오피아의 배고픈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자기의 고통은 육체로 직접 느끼면서 타인의 고통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지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갑니다. (P.133)


이 책을 읽으면서 우연히 <해바라기> 영화를 보았다. 스트리밍 서비스 왓차를 통해 고전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넷플릭스와 다른 왓차만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한 장면이 생각난다. 길거리에서 폭력을 가하는 한 남자를 약간 떨어진 경찰차에 타고 있는 두 명의 경찰이 보고 있었다. 남자를 막기 위해 가야 한다는 경찰에게 다른 경찰은 신고가 들어왔냐고 물어본다. 신고는 없었다는 말을 들은 경찰은 밥 먹을 시간이니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한 남자의 폭력을 보고, 근처의 사람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고, 아무도 신고하지 않고, 신고가 없으면, 밥이나 먹으러 가는 경찰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소비를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현대화된 가난이야말로 또 하나의 더 큰 결핍, '꿈꿀 수 없는 젊음'을 낳는 주범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진정한 꿈을 꾸는 데 인색해져 버렸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허택 옮김)에서 매일매일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를 선택하느라 빼앗겨 버린 우리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 낼 자신감을 상실했다." (P.208)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꿈에서 나오는 여러 인물이나 기호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 꿈이 '왜, 어떻게' 나 자신의 운명과 상처를 반영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그 상처를 치유해야하는지 도움을 주는 것은 융의 분석심리학입니다. (P.246)


프로이트, 융, 그리고 아들러의 심리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계속 미루고 있다.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하면서 애써 외면을 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20년에 꼭 해보고 싶다.


나만 생각하다가는 남은 물론 나 자신까지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아들러는 이런 처방을 내립니다. "14일 만에 좋아질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정해서 매일 그 사람을 어떻게 기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이오" 이기심은 자아를 향해 과도하게 집중된 리비도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까'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며, 뜻하지 않게 자기 안의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되기도 합니다. (P.266)


저에게는 공부가 가장 소중한 마음챙김의 기술이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미치게 좋았습니다.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할수록 치유 불능의 열등생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등감마저 좋았습니다. 병적인 즐거움이었지요. 인문학 공부의 무서운 맨얼굴은 파고들수록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라는 것을 기쁘게 깨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지함을 깨달을수록 신이 났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진짜 배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화와 예술과 정치에 관한 모든 공부가 신명났지요. (P.345)


공부가 마음챙김의 기술이라니 멋진 생각이다. 사실 내가 독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사회과학, 역사 분야를 좋아한다. 물론, 심리학이나 철학, 자연과학으로 가면 훨씬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사람의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몰입의 조건은 무엇일까?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최고가 될 수 있는가? 

2차대전 때 독일은 어떻게 프랑스를 몇 주 만에 점령할 수 있었을까? 춘추시대 때 제나라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을까? 왜 십자군을 창설해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서 그렇게 나쁜 짓을 했을까?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엄청난 영토를 자랑하던 로마는 왜 무너졌을까?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왜 러시아를 침공해서 모스크바를 점령하러 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왜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농업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어떻게 변화되었나? 


호기심이 왕성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니고, 책을 읽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 거 같다. 일단, 책을 읽자. 나머지는 책이 해결해 줄 것이다. 


2019.12. 8 Ex. Libris. HJK

 

제게 공부란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삶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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