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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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집 근처의 교보 문고로 뛰어가서 구매했었다. 이제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계속 책을 대여하다 보니 잠시 늦어졌다. 항상 구매한 책과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중에 무엇을 읽을지 고민을 한다. 누군가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다.


"집에 읽을 책이 있다면, 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나? 집에서 편하게 사놓은 책을 읽으면 되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난 주말마다 운동 삼아서 도서관에 간다. 운동이 핑계일지 모른다. 그냥 주말 오전에 도서관까지 걸어가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도서관 내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다. 암튼 도서관을 간다. 도서관에서 서고를 구경하다 보면 대여를 안 할 수가 없다. 안 읽은 책이 무수하게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몇 권을 안 가져올 수 있겠는가? 일단,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또 가야 한다. 결국,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은 집에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 4 권이 있지만, 모두 제쳐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다. 4 권 중에 2 권은 읽을 수 있고, 나머지는 연장할 생각이다. 


이 책은 정치가로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다시 자유인, 작가로 돌아온 유시민이 쓴 책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의 지식, 명석한 사고력, 토론할 때의 모습, 그가 쓴 글을 좋아한다. 정치가로서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왔을 때 그를 지지했다. 어처구니없는 토목 공사 계획으로 사람들의 표를 얻은 김문수에게 졌을 때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얼마 동안 지속이 되었던 거 같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지나온 길과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글의 내용이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핵심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하면서 글이 가볍지 않다. 그의 글 쓰는 스타일과 전개 방식을 배우고 싶다.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P.37)



내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불합리와 부조리에 도전해서 젊은 시절부터 싸워왔다. 민주화 운동, 국회의원, 진보 정당 가입 등의 약력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 모든 것을 좋아해서 아니면 불타는 정의감에 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주는 제도와 관습, 문화는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고치지 않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와 관습, 문화를 바꾸려면 '투쟁'해야 한다. '투쟁'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투쟁'하면서 즐거울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 '투쟁'이 성공하면 혜택은 모두가 함께 누리지만, 드는 비용과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P.87)



그는 왜 투쟁을 했을까? 

바로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생물학적 접근법으로 정의한 진보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와 보수 주의를 구분하는 여러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를 타파 또는 극복하는 것이 진보라는 체제론적 접근법이 있고, 진보를 불합리한 제도와 물질의 결핍, 낡은 사고방식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존재로서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철학적 접근법이 있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생물학적 접근법으로 진보주의를 바라보면 진보주의는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사적 자원이 꼭 경제적인,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내가 진보주의자 인가 의문이 생겼다. 나는 복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투표 참여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내국인의 이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이다. 전쟁에 반대하지만, 부국강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과도한 주장에 반감도 있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책임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사형 제도는 필요하다. 통일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나는 대체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진보에 조금 더 가깝다고 나름대로 생각은 한다. 그런데, 내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고, 정의, 상식 그리고 양심이다. 미국산 쇠고기, 4대강 운하, 세월호, 국정 농단, 검찰 개혁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사안들에 대해서 이 기준에 맞추어 생각했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준비할지, 어떻게 노후를 마주할지,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할지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죽는 그날까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는 그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나 혼자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취미가 있고, 어느 정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사회를 외면하지 말고, 사회 공동체 속에 있음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은 인생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듣고 나면,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미처 정리를 못한 내 생각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 어찌 보면 그의 모든 생각의 집대성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흔히 보는 조문과 장례식은 떠난 이의 명복을 비는 행사인 동시에 상실감에 빠진 유족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아이들의 친구나 거래처 직원들이 내 장례식에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도 그렇게 작별하고 싶지는 않다.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며 함께 삶의 구비를 걸어왔던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다. 흥겨운 파티를 열어 즐겁게 작별하고 싶다. 내 삶과 죽음을 애통함이 아니라 유쾌한 기억으로 남게 하고 싶다. (P. 333)



그의 글 중에 인용하고 싶은 많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 직접 읽으면서 찾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것 하나만을 기억하면 좋겠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2019.11.7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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