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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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d>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d의 연인인 dd는 어렸을 때 우산을 빌려준 사이입니다. 나중에 만났을 때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연인인지에 대한 명확한 단서는 없습니다. 사랑과 연인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d가 dd와 이별한 후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다가 세운상가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세운상가의 모습을 <d> 소설의 주제이면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부분으로 인식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버티는 힘이었던 사람과의 이별로 발생한 상실속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사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생각이 작가가 생각한 주제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을 독자의 눈으로 해석하는 권리도 있으니깐요.


세운상가를 드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고등학교 때였는지 대학교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당시에 어렸을 때부터 주로 읽었던 과학자 위인전의 영향으로 위대한 과학자의 꿈을 꾸었던 시기였습니다. 구체적인 꿈은 아니고, 그냥 막연한 환상이었죠. 며칠 고민하면, 뉴턴, 아인슈타인, 에디슨 정도는 금방 될 수 있을까라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볼트와 나사를 이용해서 조립하던 과학상자를 벗어나서 트랜지스터, 저항 등을 이용한 라디오를 비롯한 간단한 전자제품 제작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운상가를 방문했습니다. 부품 수급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다른 걸로도 유명했는데, 당시에 인터넷이 주로 채팅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이었기 때문에 여러 물리적 매체를 통한 불법 성인 동영상을 유통하는 시장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나가다가 몇 번 유혹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세운상가 방문 목적은 순수했기 때문에 기겁을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세운상가는 많은 소규모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엄청 긴 골목을 형성했습니다.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하면서 던전을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리 조사한 가게에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세운상가의 발전은 어쩌면 세운상가를 구성한 수많은 소규모 가게들의 몫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세운상가를 발전시킨다고 컨소시엄 등을 만들어서 멋진 청사진을 내민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세운상가과 인생을 함께 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야 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마치 우리집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계획을 짜고,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 거실에 들어와서 멋진 표어와 각종 광고를 도배한 후에 의사를 물어보는 거죠. 동참하려면 너가 훨씬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난 싫다라고 하면, 안돼. 대의적으로 무조건 바꾸어야 돼. 그러면, 너의 집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말하는 거죠.

물론, 세상을 평정한 자본주의 입장에서 더 많은 자본을 긁어모으기 위한 방법을 사회적으로 모두 묵인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방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며칠전에 보았던 케이블 TV 드라마 <빙의>에서 세상이 점차 망해가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주인공의 무력감과 비슷한 감정입니다. 뭔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 방법을 실제로 적용할 수 없을까 많은 고민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두번째 이야기,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성애자, 시력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다루다가 어느덧 세월호 사고로 비롯된 촛불 시위를 시작으로 탄핵 발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한 개인의 입장으로 담대하게 이야기합니다. 

탄핵 발표를 지켜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초반부에는 어이가 없어서 후반부에는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마치 숨쉬는 것과 같으니 더 이상 뭐라 말할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촛불 시위를 응원했지만, 참여한 적은 없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참여를 했고, 촛불 시위 때 딸아이가 찍힌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딸아이가 역사의 현장을 있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치사한 변명일 수 있지만, 촛불 시위에 힘들게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한 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저도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한국 소설만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생각과 인식을 접할 때 불편한 점도 있지만, 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고 싶기도 합니다. 한국 소설을 찾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는 없다>의 주인공은 약 3천권의 책을 가지고 있고, 매년 이정도 분량을 유지하기 위해 버릴 책들을 주기적으로 골랐습니다. 저는 5백권이 안되는 책조차 주기적으로 버릴 책들을 골라야 하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니멀리즘에 많은 책들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입니다. 


2019.5.19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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