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드리드 일기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제 원한다면 누구든 원하는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여행 관련 콘텐츠에 대한 소비도 많고, 그런 사진과 영상을 보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요새 나오는 콘텐츠들은 뭔가 설정 느낌이 강하다. 처음의 그 자연스러운 느낌, 낯선 해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들에 대한 내용은 점점 희미해지고 광고나 홍보, 인증샷 남기기 위주의 내용이 많다.
소설가 최민석의 <마드리드 일기>는 협찬이나 광고 없이 딱, 보통의 우리들처럼 해외여행을 가서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해외 현지 체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우리처럼 해외에 여행을 갔다는 특수성때문에 충동구매를 하려다가 주머니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그런 소탈한 일상이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음, 엄밀하게 말하면 협찬은 아니지만 '소설가'라는 직업 특수성으로 토지문화재단과 스페인 문화체육부가 협정한 '교환 작가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두 달 간 숙소와 식사를 제공받긴 했다. 그러나 오히려 작가가 우리보다 더 소탈하게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므로, 공감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여행 에세이 <마드리드 일기>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마드리드를 향하여 떠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숙소 창문에서 갑자기 떨어진 블라인드를 고쳐달라고 했지만 오지 않는 직원을 기다리다 지쳐 쓰는 에세이, 첫 문장부터 참 친숙하다.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를 경유하고, 이코노미석에서 몸을 구긴 채로 기내식을 열심히 먹고, 배가 고프지 않아 바르샤바에서 어른이지만 '어린이 메뉴'를 시키고 푸짐한 식사에 만족한다. 정말 내돈내산으로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를 그대로 보는 듯 하다.
Kiss&Fly : 공항의 정차구간
전 세계에서 만난 호텔 청소부 중에 가장 영어를 잘 하는 직원이 블라인드를 손봐주는데, 심지어 리셉션 직원이나 미국 청소부보다 영어를 잘 했다고 한다.
저자가 '작가 프로그램'으로 묵게 된 숙소는 '레지덴시아 데 에스뚜디안떼스'라는 곳으로 스페인 문화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호텔이라고 한다. 이 숙소는 유럽의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학생 기숙사로 쓰였으며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국민 시인 로르카 등과 같은 예술가들이 학생 시절에 이곳에서 생활했고 아인슈타인과 퀴리 부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 같은 학자도 학술 세미나를 하러 온 유서 깊은 이곳에 작가도 묵게 된 것이다. 여기는 기숙 장학생과 방문작가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삼시 세끼를 모두 주고, 객실 청소까지 해 주는 곳으로 작가에게 최상의 공간이라고 느끼며 스페인 마드리드 생활을 하게 된다.
베를린->백림
마드리드->마덕리
한국에서 이렇게 불린다는 외국의 지명들에 익숙해지며 작가가 가장 먼저 마련한 것은 바로 '중고 자전거'였다. 두 달만 탈 자전거라 돈을 아끼고 싶어 좀 더 싸고 아담한 자전거를 만지작거리니 직원이 나타나 "그건 어린이 건데요!"라고 말한다. 자존심이 깨어나 예전에 생각만 했던 사이클과 자물쇠, 휴대폰 거치대까지 사기 위해 소비한 돈은 무려 232.9유로. 자전거 직원이 사진을 찍자고 하자 한국의 소설가와 기념사진을 남기려나 했는데 알고보니 자전거 도둑이 많아 구매한 사람을 자전거와 함께 인증샷으로 꼭 남겨야 한다는 여담. 마드리드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했을 때 경찰이 사진을 보고 원래 자전거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준다고 한다.
작가는 학원비 할인을 받고 기분이 좋아 캐리어를 사려다가, 이달의 신용카드 대금 안내 메시지를 보고 조용히 충동 구매욕구를 접는다. 마드리드 펍 '제임스 조이스 아이리시 펍 마드리드'에는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시인 예이츠와 제임스 조이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고 오후 2시 사람들은 펍에서 햇살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고 영국 축구를 본다. 펍에서 만난 런던의 신사는 '아스널 로고'문신을 보여주며 자신이 어디 팬인지 알려준다.
스페인어 학원에 가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한국인은 과묵하다는 인상을 주고, 멋쩍어 자주 웃어 상냥하다는 인상까지 준다. 부족한 스페인어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어쩔줄 몰라 하는 모습이 낯선 나라, 낯선 언어를 마주한 우리들과 오버랩된다.
마드리드의 일상을 유쾌하고 가볍게, 공감가는 이야기로 가득 채운 <마드리드 일기>. 마드리드 축구장에 간 이야기, 마드리드의 한국식 식당에 가서 위안을 받은 하루, 숙제를 착각하여 미리 다 해버린 것, 한국인 입맛에 맞는 스페인 음식을 먹고 행복해진 것 등등 읽기만 해도 마드리드에 함께 간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