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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순례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미국의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과 영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고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은 작가 엘리스 피터스! 엘리스 피터스가 무려 60대 중반에 쓴 <캐드펠 수사>시리즈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완간 30주년 기념으로 최근 개정판이 나왔는데 1권부터 쭉쭉 출간되어 벌써 10권 <고행의 순례자>까지 나왔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모든 소설을 꼭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역사적 사건 전개 과정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왕이면 초반부 책인 1~5권까지는 반드시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팬이라면 아예 1~10권 리미티드 블랙 에디션을 박스 세트로 구매하여 소장하는 방법도 있다.
<캐드펠 수사>시리즈는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수사 '캐드펠'이 주변에서 일어난 다양한 살인 사건들을 해결하는 전통적인 느낌의 추리물이다. 실제로 영국에 위치하고 있는 중세 수도원인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며, 당시 영국의 역사적 상황은 물론이고 중세 시대 사회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내 주변인들이 작품을 쓰기 위해, 또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중세 유럽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고민한다면 <캐드펠 수사>시리즈를 추천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움베르트 에코도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아 <장미의 이름>을 집필했겠는가.
이 모든 흥미로운 사실을 제쳐놓더라도 <캐드펠 수사>시리즈는 그 자체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피 튀기고 잔혹하며 뒷맛이 왠지 모르게 찝찝한 현대 추리소설이나 영화에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면 <캐드펠 수사>시리즈를 적극 추천한다.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인 모습, 주변인들의 따뜻한 마음 등이 돋보이는, 요새 보기 드문 타입의 힐링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이 나오지만 훈훈하고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류의 소설 책이다.
10권 <고행의 순례자>에서는 앞 권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 상세히 다뤄졌던 성 위니프리드 유골을 수도원으로 옮긴 후, 유골 이장을 기념하는 축제를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최소한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읽어야만 <고행의 순례자>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 쉽게 이해된다.
<고행의 순례자>에서는 여전히 영국의 왕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이 진행되고 있다. 스티븐 왕과 모드 항후는 서로 영국의 왕이 되기 위해 각자의 진영을 확보하고 정치적 싸움을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낀 백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슈롭셔 행정 장관은 휴 베링어로, 똑똑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그의 아내는 '얼라인'인데 이들의 결혼에 캐드펠 수사도 지대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월 스티븐 왕이 링컨 전투에서 패배한 뒤 브리스틀 성에 갇히게 되었다. 황후와 왕의 상황이 뒤바뀌게 된 것이다. 아직 황후는 왕위에 오르지 못했고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입성하지도 못했으나 스티븐 왕의 가신이자 왕의 치하에 놓인 슈롭셔주의 행정 장관인 '휴 베링어'로서는 황후에게 유리한 형세가 불안할 따름이다.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소도원에서는 수도원장님이 윈체스터로 호출되어 가고 부수도원장인 로버트가 그 틈을 타서 이런저런 지시 사항을 내리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도 성 위니프리드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위니프리드 성녀의 '매장'에 관련된 진실은 캐드펠 수사와 일부가 알고 있는 비밀이다. 캐드펠 수사는 성녀가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을 거라 믿고 감쪽같은 기술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호성인과 함께 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마을 사람들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조력자가 되어 행동했다. 캐드펠 수사는 이 비밀을 친구가 된 휴 베링어에게 시원하게 털어놓고 저녁 식사와 기도를 끝낸다.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수사를 찾아와 수도원장이 모드 황후 편에 섰던 라이날드 보사르 기사의 영원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캐드펠 수사는 기도를 올리며 안젤름 수사가 "라이날드 보사르, 라이날드 보사르..."라고 흥얼거리는 것을 듣는다. 묘하게 음산하고 불온한 웅얼거림... 유골 이장에 참여하기 위해 온 순례자들이 하나둘 수도원에 모인다. 이들 모두가 순수하게 성녀를 추모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속셈이 있는 자들도 섞여 있고, 성 위니프리드의 성스러운 기적과 함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건 뒤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지키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한다. 10권 <고행의 순례자>에서도 우리는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캐드펠 수사의 모습과 함께, 그에 대한 엄청난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된다. 그 비밀을 알고 싶다면 꼭 10권을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