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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러스트
이종수 지음 / 아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한국화, 동양화, 전통 그림 하면 '어려움'이나 '따분함'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을 포함하여 유명한 외국 그림의 전시회는 곧잘 찾아다니며 일부러 보러 가지만 상대적으로 한국화는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 교과서에나 실리는 그림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화에도 얼마나 다정하고 예쁜 그림이 많은지, 제대로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한국의 일러스트>는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예쁘고 산뜻한, 일러스트같은 한국화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김홍도, 신윤복 등과 같은 유명한 화가가 그린 익숙한 그림도 있고, 조금 낯선 그림도 있으며 재미있는 그림으로 커뮤니티에 떠돌던 그림도 있다. 저자는 오감과 함께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 75점을 골라 5개의 챕터로 구분했다. 저자가 제안하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지금 봐도 참 어여쁜 한국화들을 감상해 보자.
<한국의 일러스트>의 다섯 가지 감각들
아름답다
감미롭다
짜릿하다
향기롭다
황홀하다
챕터 '아름답다'에 실린 첫 번째 그림은 19세기 중엽의 그림 전기, 「매화초옥도」(국립중앙 박물관)이다. 사람은 붉고 푸르게 그려졌고 온 산에는 백매화가 가득 피었다. 설산 사이에 작은 집이 하나 있는데 작은 집에 사는 이는 '임포'라는 중국 시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붉은 옷을 입고 다리를 건너는 이가 화가 고람 전기, 벗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옛 시인의 고사에 자신을 그려 넣은 화가의 센스, 우리도 이렇게 그림을 감상하며 눈 덮인 산에 고즈넉히 앉아 있는 벗을 찾아가는 마음을 헤아려 본다.
박기준의 「백선도팔곡병」에는 어여쁜 부채들이 한가득 나와 있다. 실제로 사용했을 법한 부채들, 접이식 접선과 손잡이가 있는 단선 등 모양도 손잡이도 다양한 부채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자세히 보면 부채마다 그려져 있는 그림도 다 다르다. 그림 속에 그림이 도 있는 셈, 이 화려한 부채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달은 기울어 밤은 삼경, 두 사람 마음은 둘만 알리라
조선의 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빼 놓으면 섭섭하다. 보름달처럼 밝지 않은, 초승달이 뜬 날 연인들이 담벼락 뒤에서 몰래 만나고 있다. 여인은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쓰개 치마로 살짝 얼굴을 가리고 있다. 남자도 깔끔한 흰색 도포를 입고 연인을 바라본다. 삼경에 연인이 만나 어떤 마음을 주고 받았을 지는 상상에 맡긴다.
<한국의 일러스트>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챕터는 바로 귀여운 동물들이 총출동하는 3장. 짜릿하다 이다. 첫 페이지부터 김홍도의 「황묘농접」의 귀여운 치즈고양이가 우리를 반긴다. 따뜻한 날씨에 피는 패랭이꽃과 제비꽃을 보고 나비가 날아왔고, 고양이는 나비와 함께 장난 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옛 그림에는 각 소재마다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한자의 음을 가져와 일종의 말놀이로 그림 주제를 만든다고 한다. 고양이의 묘猫는 칠십 노인을 뜻하는 모耄, 나비의 접蝶은 팔십 노인인 질과 발음이 유사하여 이런 그림은 '묘접도'가 아니라 '모질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제비꽃과 패랭이는 장수와 평안함을 기원하는 꽃이며 조촐히 옆에 그려진 바위는 십장생의 하나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귀여운 고양이와 나비가 노는 그림이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라니, 옛 그림은 참 재미있다.
고슴도치가 과일을 훔쳐가는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홍진구의 「자위부과」도 있다. 말 그대로 고슴도치가 오이를 짊어지고 가는 그림이며 옛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라고 한다. 포도나 오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소재이며 고슴도치의 많은 가시도 마찬가지이다. 이 외에도 변상벽의 「묘작도」, 김식의 「고목우도」 등 다양한 동물 그림들이 차례로 나와 있다. 눈으로 그림을 보고 제목과 그림의 상징들을 알아보며 한국화 읽는 방법도 재미있게 알아본다.
지금 봐도 잠 어여쁘다 한국화,
하루하루가 바빠 박물관이나 전시회는 가지 못하더라도 <한국의 일러스트>를 보면서 예쁜 우리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