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일본문학 베스트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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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이다. 이들의 소설은 가볍게 잘 읽히면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묘한 느낌이 있다. 소설 군데군데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내가 좋아하는 류의 웃음 코드다. 비극 속의 희극,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의 웃음 포인트처럼 말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소설의 제목 <사양>처럼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그 와중에 정식 예법에는 맞지 않지만 귀엽고 진짜 귀족처럼 보인다는 어머니의 식사법이라든지, 전쟁이란 시시한 것이라 말하면서 전쟁이 끝난 직후에 한 신문에 실린 재미있는 시를 말하는 가즈코라든지 이런 부분이... 그래 참 귀엽다.

특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은 수동적이지 않다. <사양>에 나오는 가즈코처럼 통통 튀는 매력을 갖고 있으며 약간 남다른 체계로 사고해야 한다고 할까?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지금 기준으로도 수용하기 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니 사람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또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이런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전형적이지 않은, 통념을 뒤집는 데 앞장서는 여성. 성림원북스 <사양>의 표지에는 이런 가즈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지친 기색의 얼굴이지만 단호한 표정의 여성이 스스로의 목을 가볍게 쥐려고 한다.

소설의 제목 <사양>은 우리가 흔히 '사양길에 접어들다'라고 쓰는 말의 '사양'이다. 저무는 해처럼 새로운 것에 밀려 점점 몰락하는 모습, 바로 가즈코의 가족 이야기이다. 전쟁 후 급격히 몰락해 가는 일본의 귀족 가문, 마약과 술에 빠져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동시에 바닥을 딛고 새롭게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는 나오지 모두 사양길을 걷고 있다. 특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동생 나오지는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초상을 반영한 인물로 소설 속에서도 자살을 택하고 현실에서도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 결국 성공한다.

<사양>에서 점점 시들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며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생을 놓지 못하는 가즈코 또한 그들과 함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는 남동생이 쫓아다니던 소설가이자 유부남이며 술꾼인 우에하라에게 사랑을 느끼기까지 한다. 가즈코는 우에하라가 자신을 책임질 사람이 아니며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서도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갖는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귀족의 아가씨에서 가족들을 다 잃어버리고 사생아의 어머니가 된 가즈코, 그러나 그녀는 마냥 주저앉지 않는다.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며 아이와 함께 태양처럼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많은 이들이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속에 나오는 동생 나오지와 동일한 삶을 살면서 한 편으로는 '가즈코'처럼 살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또한 <사양>에 나오는 모든 주요 등장 인물들이 그 주변의 실제 인물 또는 그를 반영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혁명에 성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지만 가즈코가 자신의 아이를 '나오지가 어떤 여자에게 몰래 낳게 한 아이'라고 여기겠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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