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평점 :
비행기 그림과 함께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리고 샛노란 알약 하나를 잡고 있는 손과 돈더미.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라스트 플라이트>는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새빨간 제목은 꼭 핏물이 번진 것처럼 보인다.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 모든 여성들에게 바친다는 <라스트 플라이트>,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에 나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네 절망과 내 절망이 모여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일까?
<라스트 플라이트>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뉴욕 존 F.케네디 국제공항...
추락 당일.
이 책에서 비행기가 결국 추락할 예정인 걸까? 비행기 추락을 계획했지만 무산되는 이야기일까?
'나'로 지칭되는 어떤 이가 공항 터미널에서 어떤 여자를 찾는다.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딱 세 가지. 이름, 생김새 그리고 아침에 푸에르토리코행 항공편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려고 온 사람들을 살펴보며 꼭 그들이 오늘 죽을 것처럼 예상하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나'는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걸까? 타겟인 여자를 찾았다. 도망자들이 늘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신경쓴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의 앞쪽에 줄을 서려고 한다. 여자가 곧 사라진 사람들 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책은 두 여자주인공 클레어와 이바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먼저 클레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정계에서 케네디가 다음으로 유명한 쿡 가문, 클레어는 로리 쿡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클레어는 엷은 화장으로 감춘 목 아래쪽 멍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만지작 거린다. 다니엘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직원 다니엘에게 어디를 가야 하는지 미리 말한다. 클레어가 사전에 공지된 일정을 소홀히 여기면 다니엘은 이 일을 반드시 남편에게 보고한다. 로리는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클레어에게 언행을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쿡재단>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클레어의 평화는 지키지 못한 듯 하다. 로리에게 고용되어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은 클레어를 감시하고 보고한다.
이런 로리의 눈을 피해 만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체육관에서 만나는 '페트라'이다. 클레어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펜실베이니아의 귀족 학교에 다녔는데 러시아 출신 마피아 딸인 페트라와 니코가 항상 다른 아이들로부터 클레어를 지켜주었다. 2년 전 우연히 체육관에서 마주치게 된 페트라, 오직 페트라 앞에서만 클레어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느 날 페트라는 클레어의 멍 자국을 보고 남편과 헤어지라고 말한다. 클레어 또한 과거에는 로리와 이혼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소송이 유리한 쪽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고 대학 시절 친구의 집에 도피했으나 그 친구의 남편이 로리의 친구였다. 로리는 클레어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며 클레어를 데려갔고, 클레어는 그 날 집으로 끌려가서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겠다는 위협을 들었고, 로리는 쿡 집안의 전통과 명예를 위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로리가 쿡 집안의 아들답게 진보적이고 모범적이라 믿었고, 클레어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로리와 과거 사랑을 나눴다던 '매기 모레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남편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곳으로 숨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클레어. 대체 매기 모레티는 누구이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클레어는 이 지옥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페트라와 몇 년에 걸쳐 실종 계획을 세운 클레어는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를 예약한다. 클레어는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를 회상한다. 로리와 매기는 연인이었고 둘이 크게 다툰 날 로리가 차를 몰고 맨해튼으로 향했고, 그날 밤 집에서는 화재가 났고 매기는 계단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게 느꼈던 감정을 자신에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클레어, 과연 그날 밤의 진실은 무엇일까?
클레어는 체육관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낸 것을 추궁하는 로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잠자리에 든다. 로리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로리의 컴퓨터 하드를 복사한다. 만약의 경우 협상의 카드로 쓰기 위해서, 이 과정이 어찌나 두근거리는지. 클레어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듯이 다시 로리의 옆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나는 분명 클레어가 아니고 안락한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 뿐인데 클레어에 이입이 되어 심장이 쫄깃해진다.
탈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로리가 출장을 떠날 장소를 바꿨다고 가사도우미 직원인 콘스탄스가 클레어의 여행 가방을 정리한다. 존 F.케네디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을 이용해 푸에르토리코로 가게 된 클레어, 로리는 클레어 대신 디트로이트로 향했고 탈출을 위해 계획했던 소포가 로리에게 가 버렸다. 이바는 안절부절 못하는 클레어를 발견한다, 꼭 자기처럼 어딘가로 도망가 사라지고 싶어하는 여자. 이 둘은 서로의 비행기표를 바꾸기로 결정한다.
<라스트 플라이트>는 정말 매력있는 소설이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클레어의 입장이 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손에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그녀가 이 지옥같은 생활과 악마같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로리가 그녀를 주적할 수 없기를 바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바의 입장에도 몰입된다. 이 둘의 시점이 왔다갔다 하는데, 위화감 없이 이 두 여성들의 입장에 빨려들어간다. <라스트 플라이트>의 두 주인공들이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들을 지옥에 빠뜨린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알 수 없는 '나'는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쫄깃해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읽게 만드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