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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전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두꺼운 추리소설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원서로 도전해 보았으나 너무 어려운 종교적 언어와 고급 단어, 중세 용어 등에 좌절을 거듭하며 후루룩 읽을 수밖에 없었다. 움베르트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쓸 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소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충격, 생각보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엘리스 피터스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 소설 작가로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무려 훈장을 수여받은 이 작가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10대 때 읽고, 30대 읽고 또 읽어도 그 감동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추리 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처음 중세 수도원 배경의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충격일 것이고 <장미의 이름>에 푹 빠져 순식간에 읽어내렸던 독자에게는 '취향저격'소설을 또 하나 발견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재미있게 읽고 <다빈치 코드>와 같은 종교적 배경의 추리소설에 흥미가 있다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그냥 고민없이 읽어도 된다. 무조건 취향일 테니까, 책 읽을 공간과 시간만 마련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맨 앞부분에 중세 웨일스, 슈롭셔와 웨일스 국경지대, 슈롭셔주 슈루즈베리, 슈루즈베리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지도가 나와 있다. 주인공이 거주하는 수도원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주로 활동 무대가 되는 지역들이 어떻게 인접해있는지 궁금할 때 참고하면 좋다. 이 곳은 영국의 실제 지명이며, 슈루즈베리에 수도원도 실제로 존재한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태어나서 27년 간 생활한 도시이기도 하다. 다윈의 기원에 대한 투어를 하게 되면 슈루즈베리를 둘러보게 된다고 한다.
중세 수도원 배경의 추리소설이라는 말만 들으면, 수도원이라는 따분한 곳에서 어떻게 재미있는 사건이 진행된단 말인가 하는 편견을 가질 수 있는데 웬걸...충실한 종교인들이긴 하지만 세속적 이유로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수사들을 주인공 '캐드펠'의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심심할 틈이 없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배경이라 참신하기도 하고 중세 종교인들의 생활이 신기하게 와 닿으며 별 재미있는 이유로 사건이 진행되구나 싶다. 종교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소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중세 수도원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은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다. 소설은 1137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귀의하여 수사가 된 '캐드펠'의 눈으로 진행된다. 젊었을 때 온갖 모험을 하고 연애도 실컷 한 캐드펠은 수도원에서 평화롭게 허브밭을 가꾸며 수사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조수들, 수도원장, 부수도원장, 보좌 수사 등의 소개가 주루룩 이어지고 수도원생활이 평소 어떻게 이어지는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사건이 시작되는 계기가 참 재미있다. 커다란 키와 수려한 외모, 귀족적이고 위풍당당하며 스스로도 그런 본인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수도원장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다지고 있는 인물이다.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환으로 성인의 유골을 확보하여 수도원의 위대한 영험을 가진 수호성인으로 안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회의 도중 캐드펠의 조수 중 한 명인 콜룸바누스 수사가 간질 또는 다른 이유나 히스테리 등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캐드펠이 재빨리 양귀비즘을 사용하여 진정시키기는 했으나 발작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 부수도원장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제롬 수사'가 간병을 맡는다.
다음 날 아침 제롬 수사는 흥분한 얼굴로 미사에 나타나 기적을 목격했다고 고백한다. 콜룸바누스 수사를 간병하다가 꿈을 꿨는데 아름다운 성처녀 위니프리드가 나타나 자신이 순교한 자리에서 솟아난 샘물로 콜룸바누스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성녀 위니프리드는 신앙심이 깊은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음심을 품은 왕자 크래독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다. 위니프리드는 멀리 교회가 보이는 곳으로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왕자는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짓을 공개할까봐 두려워 검으로 그녀의 머리를 베어버린다. 성인 베이노와 신자들이 그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고 성인이 살인자에게 저주를 퍼붓자 살인자는 양초처럼 녹아내려 사라지고, 성인 베이노가 위니프리드의 머리를 들어 목에 갖다 대자 그녀는 다시 살아난다. 위니프리드가 다시 살아난 곳에 성스러운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말이다.
콜룸바누스 수사는 성녀 위니프리드의 샘물에서 몸을 씻고 나았다고 보고한다. 부수도원장은 이 일을 핑계로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와 수도원에 안치하고 싶어하고, 캐드펠과 그의 다른 조수 존 수사는 그 여정에 따라나선다. 정말이지 초반부터 재미있는 이유로 주인공의 여정이 시작된다. 기적과 성인, 성인의 유골을 안치하는 일이라니 추리소설이 이렇게 진행될 수도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캐드펠의 성격은 유쾌하고 시원시원하며 캐드펠과 함께 수도원 생활을 하는 수사나 수도원장, 부수도원장 등은 종교에 귀의했으나 각자 저마다의 속셈과 세속적인 욕구들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또한 중세 마을이라는 배경과 중세 사람들의 삶, 종교에 대한 태도 등도 흥미롭다. 중세 배경이지만 통통 튀는 사람들의 이야기, 캐드펠이 해결해나가는 사건이 재미있게 이어진다. 더운 여름을 식혀줄 추리소설, 생소한 장소와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고 싶다면 <캐드펠 시리즈>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