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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으로 모든 정보가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궁금한 정보를 쉽게 찾고 전문가와의 상담도 훨씬 쉬워졌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전세계의 온갖 나쁜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운이 나쁜 경우 또는 어떤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행동할 경우 사진, 동영상 등을 찍혀 협박을 당하거나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심각한 경우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상 때문에 고통받다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본 것>, 부제는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에는 2021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선정된 소설로, 소셜 미디어의 유해 콘텐츠를 검토하고 삭제하는 일을 맡게 된 사람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본 것>에 나오는 소셜 미디어의 어두운 모습은 그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앞서 내가 말한 영상들은 물론이고 이들은 매일같이 동물 학대, 자해, 혐오, 폭력 등을 가감없이 봐야 한다. 수없이 많은 인간의 잔인함과 잔혹함에 여과없이 노출된 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여러가지 학대를 받는다.
주인공 케일리가 입사한 회사 '헥사'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을 감수하는 곳이다. 여기서 헥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콘텐츠 감수자'로서 일하였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이들은 점점 피폐해진다. 학대 당하는 개, 나치식 경례, 칼로 자해하는 소녀 등은 이들이 수없이 접하는 전형적인 영상이었다. 심지어 소송에 임하는 변호사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헥사는 케일리가 입사 면접을 볼 때부터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구인 광고에는 기껏해야 '품질 보증 관리자'라고 적혀 있었고 케일리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20퍼센트 높은 시급에 홀려 지원한다. 실제로 거기서 하게 될 일은 영향력 있는 미디어 대기업을 위한 '콘텐츠 평가'라는 설명을 들었고 어떤 경우에도 그 대기업 회사명을 언급해도 안 된다는 권고를 받는다.
헥사에 지원한 이들은 플랫폼, 자회사 사용자, 봇에 의해 '유해'라고 보고된 게시물과 영상을 검수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연수 첫 날 감수팀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적힌 안내서를 받는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모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유해 게시물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게시 가능
무슬림은 여성이나 동성애자, 이성애자처럼 '보호 카테고리'에 속하기 때문에 첫 번째 문장은 유해한 것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보호 카테고리가 아닐뿐더러, 무슬림이 유해한 용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이해할 수 없는 게시 가능 콘텐츠는 다양하다.
창문 밖으로 고양이를 내던지는 사람의 동영상은 학대행위가 아니면 업로드 가능
침대에서 키스하는 동영상은 성기나 여성의 유두만 보이지 않으면 가능, 단 남성의 유두는 보여도 괜찮음
질 안의 음경을 손으로 그린 그림은 가능
외음부를 디지털로 그린 그림 금지
벌거벗은 아이의 이미지는 뉴스 관련 자료면 가능, 홀로코스트와 관련되면 금지
소아 성도착자에 대한 살인 협방 게시 가능, 정치인에 대한 살인 협박 게시 불가능
연수 마지막 날 이들은 연수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영상이 게시 가능한지 금지인지 판단하는 시험을 받아야 했다. 성인 여자가 더러운 길바닥에 아기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자 소년 둘이 아기에게 돌을 던지는 영상, 여성의 유두가 노출된 영상, 몸에 불이 붙은 남자의 영상을 비롯하여 심지어 어떤 남자가 로트바일러 개를 성폭행하는 영상까지 봐야 했다.
이 외에도 케일리를 포함한 동료들은 게시물 평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정확하지 않으면 압박을 받았다. 이들은 휴식시간이 고작 두 번 뿐이었으며 개중 하나는 칠 분밖에 되지 않아 화장실에 줄을 서느라 시간을 다 써야했고 하루에 500개 이상의 위반 게시물을 처리하고 정확도가 90퍼센트 밑으로 내려가면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정확도가 계속 오르지 않으면 해고되었으며 다리를 펴고 싶어 책상을 떠나면 타이머가 작동하는 곳이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동료들은 점점 자해를 하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겪은 케일리는 소송에 참여하기보다는 그저 이 일을 흘려보내고 잊고 싶어한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일상을 유지하며 자신의 빚을 변제하고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변호사에게 서술한다. 이 점이 더욱 마음 아프고 소름 끼친다. 회사는 이들을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 대하고,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처참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 <우리가 본 것>은 그 동안 우리가 외면해 왔던 소셜 미디어의 큰 문제이다. 저자는 이를 케일리의 목소리로 담담하기 그지없게 서술하고 있으나 독자들은 모든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또는 이미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본 것>는 그 어떤 스릴러, 공포 소설보다 소름 돋는 소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