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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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은 <백설공주 살인 사건>, <야행관람차> 등의 미스터리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특히 일본풍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고 잘 짜여진 판에, 각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들과 생각지 못했던 반전. 미나토 가나에는 여기에 각 인물들의 '결핍'이 돋보인다. 이번 소설 <일몰>도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일몰>은 살인사건과 연관된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굉장히 잔잔하면서 마음시린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세베 가오리의 엄마는 딸이 특별한 아이이길 원했다. 유치원을 들어가기도 전에 구구단과 100년 치 달력을 달달 외우고 다니는 마사다카나 한 번 본 악보를 외워 피아노를 연주하는 치호처럼. 엄마는 가오리의 학습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그녀를 베란다로 내 쫓았다. 학대가 아니라 훈육이라고, 가오리와 엄마 두 사람 다 말하지만 엄연히 학대였다. 어느 추운 날 평소처럼 베란다로 내쫓긴 가오리는 옆 집 베란다와 자신의 집 베란다를 가르는 칸막이 쪽으로 몸을 피한다. 두려움과 추위에 떨던 그녀는 칸막이 사이의 틈으로 작고 하얀 손을 발견한다. 가는 손가락에 더럽고 어쩡쩡한 손톱, 그녀처럼 쫓겨난 아이라고 추측한다. 둘은 손 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을 얻고, 가오리가 베란다로 쫓겨날 때마다 그 손의 주인도 베란다에 있다. 가오리는 나중에 옆집 모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손이 귀엽고 예쁜 사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평범한 나날이 계속 이어지던 중, 아빠의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되고 가오리는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백설공주 살인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몰>에서도 자극적인 사건으로 소설 전반을 지탱한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언니를 둔 탓에 항상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가이 치히로는 무명의 각본가이다. 적당히 괜찮은 평을 받은 한 작품 이후로는 제대로 착수한 시나리오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신예 스타 감동 '하세베 가오리'로부터 차기작 각본을 써 달라는 의뢰를 맡는다. 하세베 가오리 역시 가이 치이로와 마찬가지로 '사사즈카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이 치이로를 언니로 착각하여 작품을 같이 하자는 메일을 보낸 듯 했다.

하세베 가오리가 작품으로 만드려는 소재는 바로 15년 전에 일어난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이었다. 어느 가족의 은둔형 외톨이 장남이 자신의 여동생을 저택에서 칼로 찔러 죽인 후 방화해 부모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사사즈카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부모를 잃고 언니마저 교통 사고로 보낸 가이 치히로는 하세베 가오리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 사건은 사사즈카초 뿐 아니라 전 일본을 경악에 빠뜨렸고, 하세베 가오리가 그녀를 콕 집어 의뢰한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사사즈카초로 돌아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는다.

우리는 <일몰>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목덜미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두 여성이 조사하며 인터뷰한 사람들은 모두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어 작가들이 사사즈카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기도했다. 사사즈카초 가족 중 살인을 저지른 그 오빠는 전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사라는 에인절 걸스 오디션에 합격하여 얼마 후면 졸업하고 도쿄로 갈 참이었으나 그 오빠는 중학교부터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등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다수다. 이상한 것은 나중에 사라가 에인절 걸스 오디션에 합격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진 것, 사라가 허언증이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지만 더 큰 사건이 일본에 터지는 바람에 묻히고 만다.



감독은 이 사건에서 실제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를 살해한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사라는 살해되었어야 하는지 등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주변인들이 떠드는 말로만 사라가 규정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도대체 가오리는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길래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싶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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