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사들의 제국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평점 :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소설가 중 한 명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 시리즈가 새 표지를 입고 출간되었다. 책 뒤쪽의 발행일을 보니 '2024년 2월 20일 신판 2판 1쇄'라고 적혀 있다. 이번 표지엔 커다란 천사의 손에 담긴 인간 영혼의 구슬 세 개가 그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개미>, <뇌> 등에 비하면 살짝 인기가 적다고 느꼈던 <타나토노스>, <천사들의 제국> 시리즈였는데 이렇게 리뉴얼되어서 보니 반갑다. <타나토노스>는 미카엘 팽숑의 인간으로서의 삶, <천사들의 제국>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후 대천사들의 심판을 받고 <수호천사>의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신>에서는 144명의 신 후보생 중 하나가 되어 올림푸스 산의 비밀을 밝힌다. 덧붙여 모든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책 곳곳에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이 나오므로 충분히 매끄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이전의 시리즈를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면 더 이해가 쉽고, 책 내용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혜에 이르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해학이고,
둘째는 역설이며,
셋째는 변화이다.
-트램펄린 세계 챔피언, 댄 밀먼-
소설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문구, 그런데 이만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는 듯 하다. 곳곳에 나오는 진지한 문구는 책을 읽다 피식 거리게 하고,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에 감탄하고, 또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에 수긍한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가장 유명한 진리 중 하나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주인공 미카엘 팽송도 그 진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그 죽음이 극적이긴 했다. 어느 누가 갑자기 비행기가 벽을 뚫고 들어와 내 거실을 박살 내리라 생각했을까. 물론 최근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카페로 차가 돌진하는 바람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일이 몇 번 있었으나, 비행기가 그러기엔 좀 극악한 확률인데 어쨌거나 소설이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해학이 시작된다. 엄청나게 진지한 모드로 미카엘 팽송이 죽음의 순간을 묘사한다. 비행기가 거실을 부수고 쳐들어 온 와중에 조종사들의 얼굴을 살핀다. 하나는 키가 훌쩍 크고 다른 하나는 작고 머리가 벗겨진 사람, 그들이 승객들을 집 안까지 직접 데려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인 모양이라고 하는데... 당연할 것 같다.
미카엘 팽송은 전작에서 많은 활약을 했으나, 젊은 나이에 이렇게 황당하게 죽는다. 죽어서도 큰 활약을 할테니 주인공의 삶? 아니 죽음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죽음은 노인에게도 아이에게도 공평한 법, 그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으나 어쨌든 일이 그렇게 되었다. 뇌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 느껴지고 증기 같은 것이 빠져나간다. 이 <또 다른 나>가 예전 육신을 관조하고 미카엘은 더이상 예전 육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영혼> 비슷한 것은 두둥실 떠올라 지붕들 위로 날아오르고 도시 위, 행성 위를 난다. 육체와 연결되어 있던 은빛 실은 끊어지고 점점 더 위에서 끌어당기는 빛을 향해 다가간다.
중간중간 에드몽 웰스(개미 1부에 등장한 이후, 계속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을 발췌한 내용과 '가두 설문 조사에서 무작위로 질문을 받은 행인'들의 코멘트가 나온다.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여기저기 등장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발췌 내용덕에 이전의 작품부터 쭉 읽어온 사람들은 다시 읽었던 내용을 상기하며 친숙함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독자들은 내용 파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카엘이 빨려간 곳은 은하 한복판에 위치한 블랙홀이다. 제 1천계에는 죽음을 맞이한 다양한 영혼들이 모여들고 여기서 많이 본 듯한 실루엣을 발견한다. 옆 방에 있던 로즈와 아망딘도 함께 망자의 세계에 왔다. 2천계, 3천계 등등을 넘어 7천계에 도달한다. 저승의 신 아누비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의 나루지기 카론 등등으로 불린 천국의 열쇠 관리자가 그들을 세 심판관 앞에 세우고 영혼의 무게를 단다. 여기서 지옥은 존재하지 않고 지상과 천국만 있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지상으로 돌아가 환생하는데, 환생이란 고등학교 학생들이 치르는 대학 입학 자격 시험같은 것으로 낙방하면 재수를 하게 되어 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낙방하여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것을 명 받았으나 갑자기 한 손이 미카엘을 붙잡는다.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 바로 미카엘의 <수호천사> 에밀 졸라이다. 고집 센 수호천사 겸 변호사를 만난 덕에 미카엘의 선업 점수와 악업 점수의 합산은 600점을 넘겼다. 드디어 환생의 순환에서 풀려나 <6>의 존재가 된 미카엘.
<6>의 존재는 지상에 내려가 큰 깨달음을 얻은 자로 환생하여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진보시키는 일을 맡거나 <천사>가 될 수 있다. 천사들은 인간의 세 영혼을 담당하여 적어도 하나를 진보시켜 환생의 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임무를 맡는다. 당연히 미카엘은 <천사>가 되기를 선택하고 <지도 천사> 에드몽 웰스를 만난다. 지도 천사로부터 숫자의 비밀과 영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배우고 수태의 호수에 보이는 섹스하는 수많은 남녀들 사이에서 수호를 받을 영혼3개를 선택한다. 이 사람들을 <의뢰인>이라고 칭하며 7개월을 더 기다려 어떤 카르마를 받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미카엘이 맡은 아이들의 이름은 자크, 비너스, 이고르. 각자 다른 나라의 다른 인생을 살아갈 인간들이다.
우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을 읽으면서 천사들의 세계, 즉 영적인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보면서 동시에 다른 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축복 속에서 태어나는 삶, 낳고 싶지 않다는 소망 속에 기어코 탄생하는 삶, 쌍둥이 형제를 흡수하고 태어난 삶 등부터 시작하여 인간들의 삶은 정말이지 제각각이다. 영혼의 세계, 즉 천사들의 세계는 우리의 문화권과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고 신화 속에서 본 내용들도 있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도 많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