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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매트릭스 - 지구의 모든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을 위하여
로버트 마이클 파일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5월
평점 :
[리뷰]네이처 매트릭스-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위하여
도시에서 10대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자연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달밤의 정서에 대한 시조가 나와 '고즈넉함'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학생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골에 있는 조부모님 집이라든가 가족 여행을 시골로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고요한 달밤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도시의 빛 공해, 소음 공해로부터 벗어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달밤 아래 오롯이 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을 상기시키고 싶었으나 아이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가 자연을 보존하기보다는 얼마나 개발, 발전, 경제를 우선시했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분이고 수많은 동물 중 한 종일 뿐인데 인간이 지독히도 인간 위주로 자연을 이용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항상 고향처럼 생각했던 시골도 더 이상 완전한 자연의 고즈넉함을 만끽할 수 없다. 멀지 않은 곳에 뚫린 고속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도로를 이용하는 수혜자이자 온전한 자연의 소리를 잃고 만 피해자가 되었다.
세상을 좀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고자 하는
인간의 자율성과 합리성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_폴 W. 테일러. <자연에 대한 존중: 환경윤리론>중에서_(네이처 매트릭스에 나온 문구)
이같은 생각을 한 것이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나 자연철학자이면서 생물학자, 작가인 저자가 <네이처 매트릭스>라는 책을 낸 것을 보면. 이 책에는 그가 과거에 사랑했던 자연이 어떻게 훼손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이란 어떤 곳인지, 그런 자연을 인간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대해 왔는지, 국립공원에서 일하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들의 전쟁논리에 따라 무참히 망가지기도 하고 개발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느낀 감상들, 교외지역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자연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들에 대해 말한다. 인간들이 추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탁 트인 자연과 접촉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층 아파트나 건물에 가려 이런 탁 트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자연이 보존된 외국의 이런 풍경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또는 추억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모습은 인간의 안정감을 회복해주는데, 생물학자 윌슨은 이런 욕구를 '생명애'라고 칭했다. 도시가 발달할 수록 이런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경험이 줄고,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줄어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줄어드는데 이런 현상이 확대될 수록 인간은 자연과 단절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를 저자는 '경험의 멸종'이라고 말한다. 나와 이야기했던 학생도 '경험의 멸종'상태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그는 자연의 안정감이나 안락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경험을 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 않았다. 아마 이런 현상은 세월이 흐를 수록 더 심해질 것이고 자연을 별로 접하지 못한 세대들은 더더욱 자연을 지켜야한다는 생각보다는 경제논리가 우선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여러 이야기로 끊임없이 전한다.
<네이처 매트릭스>의 자연과 인간, 생태학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읽다 보면 다들 가슴 속에 있는 자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떠오를 것이다. 소중하고 따뜻하고 치유가 되는 듯한 기억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결코 자연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 속에서 결국 인간은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거나 재현하고 싶어하지 않던가.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따스한 기억을 상기하면서 자연을 보존하여 우리 후대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자연적으로.
잔잔한 에세이지만 그 어떤 자연보호 문구보다 강력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