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일어서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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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바닥에서 일어서서-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초기작



<눈먼 자들의 도시>가 리뉴얼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읽었고,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많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상당히 끔찍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작가의 문체는 담담했고 사실적이었다. 그 담담한 와중에 각 인물들에게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심리가 너무 소름끼치게 사실적으로 나와 있어,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그 경험을 다시 하게 되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진 후, 그의 초기작 <바닥에서 일어서서>를 읽었다.


<바닥에서 일어서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소설 안의 인물 속에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자신의 이야기 또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당시 포르투갈의 시골에서 일어났던, 농민들에게 찾아온 비극적인 사건들이 사실적으로 나와 있다.


개인적으론 <바닥에서 일어서서>보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더 마음에 들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세상이 흰 색으로 보이는 흑색증에 걸렸다는 허구의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서술해 나간다. 하지만 <바닥에서 일어서서>는 1900년 대의 진짜 있었던 사실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진행되지만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농민들이 대를 이어 물려주는 고달픔,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의 수렁텅이, 때로는 건강이나 생명과도 연결되는 고통과 가난 등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포르투갈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와 1대1 대응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 그래서 이들의 비참함이 완전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농민들을 현대의 노동자로 치환하면 또 먼 세상의 일이 아니다. 현실과 강하게 연결되는 이 느낌은 내가 반기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바닥에서 일어서서>를 읽으면서 몇 개월 전에 읽었던 조정래 작가의 <천년의 질문>이 떠올랐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치, 국민들의 현실 등을 노골적으로 비판적으로 나타낸 작품이었다. <바닥에서 일어서서>와 문체의 느낌, 서술 방식 등은 완전히 다르지만 잘못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는 점에서 유사했다. 

 


<바닥에서 일어서서>는 '나쁜 날씨(포르투갈어로 마우템푸)'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나온다. 이 농민 가족 3대의 이야기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된다. 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떠돈다. 정착하고자 하지만 빈곤은 늘 그들을 쫓아오고 이 빈곤은 사회구조로부터 시작되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자신들의 몸을 갈아 넣으며 땅을 일구고 지주, 정치인 등 사회 기득권에 끝없이 희생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더없이 비참했다. 이런 비참함마저 담담함으로 이끌어나가 포르투갈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1974년까지 이 가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현대에도 이런 삶을 끊임없이 반복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 <바닥에서 일어서서> 또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1900년대 포르투갈의 농민들과 역사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현대사회의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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