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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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높고 푸른 사다리-공지영 장편 소설 추천


 


<높고 푸른 사다리>는 공지역 작가의 장편 소설로, 최근 읽은 그의 작품으로는 <해리>, <즐거운 나의 집>에 이어 세 번째이다. 물론 예전에 그의 대표 소설 중 하나인 <봉순이 언니>와 <도가니>등을 읽었지만 워낙 읽은 지 오래 되어 그 생생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해리>, <즐거운 나의 집>, <봉순이 언니>, <도가니> 등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소설이지만(해리와 도가니는 '추리+팩션+사회고발' 이라는 비슷한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리>는 '해리'와 종교단체 사이의 유착 관계와 그 사이의 피해자들을 취재하는 것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주인공과 그의 어머니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 그들을 잇는 사랑이 그 무엇보다 돋보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받침대로 삼아 주인공은 '해리'에 대한 조사를 이어 나갔다. <즐거운 나의 집>은 그야말로 세 번 이혼한 엄마와 딸 사이의, 모녀 간의 사랑이 중점을 이룬다. 주인공과 배 다른 여동생은 사랑할 수 없어도 아빠가 다른 남동생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바로 그 엄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살아가면서 겪는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통해 행복을 깨닫는다. 공지영 작가는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썼지만, 그의 작품을 하나로 잇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명언이 차례 뒤에 나와 있었다.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이유는 '사랑의 섬광'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이 명언이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작가가 말하는 바라고 느꼈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도 공지영 작가의 문장은 훌륭했다.


누구나 살면서 잊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고통스러워서 아름다워서 혹은 선연한 상처 자국이 아직도 시큰거려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뛰는 심장의 뒤편으로 차고 흰 버섯들이 돋는 것 같다.


-<높고 푸른 사다리> 첫 페이지 중에서-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흔처럼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상기하기만 하면 심장이 불안하게 박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억들 말이다. 이렇듯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을 적절한 단어의 배치로 써 놓은 것을 보면서 다시 감탄했다. <도가니>의 첫 장에서도, <즐거운 우리 집>에서 모녀의 대화 속에서도 수없이 비슷한 감탄을 하였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주인공은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 수도회의 젊은 수사이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세 번이나 겪었으며 힘든 수도원 생활을 하였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수도원 생활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성욕을 비롯한 여러 욕구를 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가 수도원 생활에 적응하고 있을 때쯤, 아빠스님에게서 호출을 받는다. 아빠스님은 미국 뉴저지 뉴튼 수도원에서 받은 소식을 그에게 전달하였다. 바로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사를 대작으로 엮으면서 흥남 철수를 삽입하고, 그 안에 마리너스 수사님의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주인공과 깊이 관련된 여자 '소희'의 이름이 나온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 '소희'는 주인공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온다고 했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파릇한 대학 시절, 신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과거 속으로 푹 빠져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낯선 신학교 대학생들의 일상을 들으면서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의 친구들에 대해 듣는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한 때 사랑했던 여자 '소희'에 대해서 알아가고, 토마스 수사님을 인터뷰하면서 한국사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함께 얽힌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독자는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처럼 <높고 푸른 사다리>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델이 된 실존했던 사람들이 나온다. 작가는 송봉모 신부님의 책을 읽고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고 젊은 시절 한국에 들어와 생을 바쳤던 신부님, 토마스 신부님과 비슷한 사람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등이다. 작가는 이들의 삶을 훌륭하게 한 편의 소설로 쓰면서 한국사의 비통한 부분까지 엮어내었다. 그리고 독자에겐 훌륭한 문장으로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네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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