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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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공지영 장편소설 추천 즐거운 나의 집-행복한 가족이란 무엇일까?


 


처음으로 접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봉순이 언니>였다. 어린 날, 봉순이 언니를 읽고 봉순이의 삶이 너무 기구하고 슬퍼서 펑펑 울면서 책을 읽었다. 다음으로 읽은 것은 <도가니>, 좋아했던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처럼 시작하는 도입 부분을 보고 감탄했고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아이들의 이야기에 분개했다. 아,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여 전개해나갈 수도 있구나 열심히 타자를 쳤을 그녀의 손이 탐났다. 페이스북 게시물이 실제로 올라온 것처럼 사진과 글이 함께 실렸던 <해리>는 내 취향에 영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몰입감은 좋았다. 이번에 재출판된 <즐거운 나의 집>, 제목에는 '즐거운'이라고 나와 있지만 가정 환경을 생각하면 결코 즐겁지 않을것만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시 그녀의 표현력이 탐났다.


<즐거운 나의 집>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 후 아빠와 재혼한 새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과 함께 살던 위녕이 다시 엄마와 함께 살면서 시작된다. 엄마는 무려 3번이나 결혼을 한 후 3번 이혼했고 엄마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남동생 두 명은 모두 성이 다르다. 위녕도 두 동생과 성이 다르니 성이 모두 다른 세 명의 자녀들이 한 집에 살게 된 것이다. 엄마는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소설가이고 위녕은 그런 엄마를 보면서 모든 것을 규칙처럼 해야만 하는 아빠의 생활을 떠올린다. 그 규칙에서 언제나 벗어나고 싶었던 위녕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하나씩 찾아간다.


<즐거운 나의 집>의 스토리는 작가의 개인적 삶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도 그것을 아는지 후기에 이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것을 못 박는다. 3번이나 이혼한 여자라는 타이틀, 사람들이 모두 우려하고 연민의 눈길 또는 걱정의 눈길로 보는 것과 다르게 위녕은 그리고 엄마와 가족들은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하면서 보통의 가정처럼 살아간다. 물론 위녕의 엄마가 보기 드물게 자유분방한 쪽에 속하긴 하지만 자녀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것도 같고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고 싶어서 일을 꾸역꾸역 해 나가는 것도 비슷하다.


<즐거운 나의 집>은 위녕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절묘한 표현력에 감탄하거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어쩜 이렇게 고등학생인 위녕이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읽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갔다 했던 십대의 기분이 떠오른다. 귀찮게 치근덕 거렸던 동생의 모습도 떠오르고 어릴 때 몹시 어른 같았던 엄마와 아빠도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가 생각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곳곳에 나의 모습이 그리고 내 가족의 모습이 숨어있다. 또는 내 친구들의 가족과 타인의 가족들도.


위녕은 엄마와 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는다. 그리고 엄마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엄마들이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녀의 엄마가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무언가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위녕 또한 그렇다. 엄마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아가씨'라는 말과 미혼이냐는 질문을 몇 번 듣고 좋아하면서 위녕에 호들갑을 떨자 위녕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왜냐면......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즐거운 나의 집, 위녕의 말 중에서-

 

엄마는 깜짝 놀라 위녕을 바라본다. 위녕은 정말 결혼한 여자에게는 반짝반짝한 빛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삶의 안정감, 노련함은 보였지만 '빛' 대신에 '체념'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애써 그건 결혼 때문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라고 하지만 위녕은 어쨌든 결혼한 여자들에게서는 그 빛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저 여자는 아줌마구나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핵심을 콕 찌르는 위녕의 말에 엄마는 위녕이 가끔 무섭다고 한다.  


나 또한 엄마에게서 빛이 나는 여자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엄마였고, 엄마이고 또 엄마일 것이다. 물론 그녀는 우리를 둬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자체발광하는 빛은 아니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주변의 엄마들에게서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위녕이 말하는 아줌마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위녕의 엄마와 함께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을 잃게 되는 것일까.


어느 날 위녕의 엄마는 자신의 이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번이나 이혼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는 것은 그녀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 번째 남편이 폭력을 휘둘렀던 사실을 말하며 그녀는 가정 폭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울타리 같은 것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도 사적인 영역이라고. 그러니 당연하게 보호받아야 하고 침범당해서는 안 되지만, 이 폐쇄된 영역에서 힘이 센 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쓰자고 들면 힘이 약한 사람은 당하게 된다. 이것이 가족의 딜레마이고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 가족이 그런 일을 저지르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었고, 이렇게 말하는 위녕의 엄마도 아들을 위해 꽤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을 견뎠다.


유명한 여자의 가정 내에서의 인권은 빈민들만큼이나 비참하다.

그녀들은 가정 내의 폭력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즐거운 나의 집, 위녕의 엄마가 한 말 중에서-

 


위녕은 그런 엄마를 안아 주면서 엄마는 언제나 자동차의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라 말한다. 친구들 엄마는 자동차의 열쇠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지만, 위녕의 엄마는 스스로 시동을 꺼 버리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행복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마 위녕의 엄마는 딸의 위로를 듣고 매우 기뻤을 것이다.


이 외에 이 소설은, 재혼 가정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룬다. 위녕이 엄마의 다른 성을 가진 형제들과는 순식간에 가까워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았던 아빠와 새엄마 사이의 여동생 위현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위녕은 새삼 그들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다른 성을 가진 형제들을 사랑했던 것은 엄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고 위현에게 언니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새엄마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문제가 있는 집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이혼과 재혼을 한 가정에 대해서 다루지만 이 또한 우리들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냥 다른 집과 조금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이뤄나가는 것이다. 엄마가 된 삶, 여자로서의 삶,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부모님을 둔 자녀로서의 삶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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