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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천년의 질문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평점 :
[리뷰]천년의 질문-조정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추천
전라도 가시내는 전라도 말을 써야지
조정래 작가 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이것이다. 사투리와 표준어 사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때, 그리고 사투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가속화됐던 때 조정래 작가는 전라도가 고향인 교수님께 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나 또한 표준어도 정확히 알아 두고 사투리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쪽이었기 때문에 사투리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말을 꼭 해 주곤 한다. 조정래 작가의 위상이 워낙 대단해서인지 사투리를 촌스러운 말로 치부했던 사람들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꾹 닫는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 <아리랑> 등의 대작으로 한국의 슬픈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다시 돌아보게 했으며 출판계에서도 어마어마한 기록을 수립했다. 그처럼 20세기에 이름을 날린 작가는 2000년 대 이후 수그러들 법도 한데, 그는 21세기에 와서도 지치지 않고 이 대단한 이력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풀꽃도 꽃이다>, <정글만리> 등 꾸준히 집필을 하고 있고 그의 작품들은 오디오북, 인터넷 연재 등 새로운 매체로도 계속 나오고 있다. 덕분에 태블릿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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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있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되풀이되어온 질문. 그 탐험의 길을 나서야 하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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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신작 <천년의 질문>을 펴면 처음으로 보이는 문구이다. <천년의 질문>은 현대 사회를 겨냥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의 역할,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인문학 책에서나 볼 법한 문구, 그러나 이 사회에 태어나 원하든 원하지 않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체계에 끼워맞춰 살아야 하는 우리가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분단 이후 대기업 위주로 수도권 위주로 끊임없이 발달하다 보니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외국인들은 서울의 잠들지 않는 밤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안다. 저 불빛이 누군가의 노동력과 눈물을 갈아 넣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 경쟁을 하면서 남들을 짓밟고 만든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에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뼈가 담겨 있다. 아무리 정부가 아이를 낳으라 해도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에 애국을 할 생각은 없고, 쉼없이 여기까지 바삐 달려왔는데 여전히 허기가 지고 서울 하늘 수 많은 건물 중에서 내 것은 없다. 부를 추구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부를 역겨워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깨어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사회부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이런 사회세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때는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소리쳤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사슬에 발이 묶여 정치계와 결탁한다.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다른 이의 이름으로 내 주고 대신 자식들을 배불린다. 어찌 이들을 비난할 수 있으랴.
이 침몰 직전인 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보다는 가라앉으리라는 전망이 앞선 가운데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무엇인가? 장우진은 사회학자인 고석민에게 우리 국민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서, 집단적인 망각증에 걸려서 잊어버리고 살기 바빠 무관심해서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속이 뜨끔하다. 그리스 시대에 대해서 사회책에서 배우고 또 배우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시민들의 책임과 의무, 권리에 대한 기본이 그 때에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민의 의무를 다 하고 있던가? 사회고 정치계고 경제계고 다 인간들이 모여서 만든 것인데, 우리가 바로 세우지 못한 것이 그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조정래 작가는 이 사회를 소설 속에서 그대로 그려내면서 묻는다. 백년, 천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은 것을 또 고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