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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뇌
케빈 데이비스 지음, 이로운 옮김 / 실레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리뷰]법정에 선 뇌-뇌손상은 잔혹한 범죄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최근 대한민국을 놀라게 할 만한 잔혹한 범죄가 일어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범인들은 잡히고 난 이후에 유행처럼 뇌손상이나 정신질환을 이유로 들었다. 대한민국에서뿐만이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범죄자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변호사들은 뇌손상의 증거를 법정에 제시하며, 뇌때문에 범죄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합리적일까, 어떤 근거로 이들은 '뇌'때문에 범죄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법정에 선 뇌>는 범죄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케빈 데이비스가 쓴 책으로, 뇌손상과 범죄에 대한 여러 사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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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상된 뇌가 폭력과 살인 등 범죄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범죄자에게 내려야 할 판결은 범법행위의 처벌인가, 아니면 손상된 뇌에 대한 치료인가? 범죄자의 뇌 영상을 법정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정당한가?
-법정에 선 뇌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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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법정에 선 뇌>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과 함께, 손상된 뇌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건 '와인스타인 사건'에 대해서 다룬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시작하여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신경과학과 뇌과학, 그리고 범죄의 관련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와인스타인 사건은 다음과 같다. 정말 평범했던 백인 남성 허버트 와인스타인이 재혼한 아내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이웃들은 입을 모아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적도 없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주변인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이후에도 그는 전혀 평범한 범죄자처럼 행동하지 않았고, 경찰은 물론 변호사조차도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와인스타인의 변호사는 그의 뇌에 대한 검사를 전문가에게 맡겼고 그 결과 뇌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과연 허버트 와인스타인은 뇌손상 때문에 아내를 살해했을 때, 더 이상 허버트 자신이 아니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뇌과학 연구 네트워크가 법정에서 신경과학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활용과 오용을 감시하기 위해서 세워졌다는 점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뇌과학자라면 뇌질환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 네트워크에서 가장 활발한 의견을 제시하는 회원 중 한 사람인 펜실베니아 스티븐 모스 교수는 범죄행위의 원인과 책임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신경과학을 활용하는 것을 전반적으로 반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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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과학의 역할에 대해 과장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많아요. 모두 불충분하거나 부적절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주장들 아니면 과학에서 말하지 안는 윤리적 추론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죠. 원인이 따로 있었다는 것은 변명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법정에 선 뇌 중에서 스티븐 모스 교수의 발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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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손상이 범죄의 전적인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폭력성을 제어하려고 과연 노력했는지, 얼마나 노력했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상실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 영상 또한 설득력 있게 보일 수는 있으나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에 범죄자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줄 수는 없다고 한다.
와인스타인의 사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된 사례, 힝클리 사건, 데이비스 알론소 사건 등 다양한 뇌 손상 피의자와 사건 과정에 대해 정리해 놓은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뇌와 범죄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뇌과학과 범죄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이러한 전문가의 소견이 법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읽는다. 신경과학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뇌 손상이 어떻게 얼마나 범죄행위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으며, 이것을 이유로 범죄행위를 면책해 줄 수 없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다루어지고 있는 '뇌손상과 범죄'에 대해 심층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