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버지니어 울프의 등대로-선구적 페미니스트의 소설


 


한국에서도 페미니스트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어 울프'의 소설과 에세이를 찾기 시작했다. 버지니어 울프는 19세기 후반의 여성 소설가로 뛰어난 작품을 쓴 선구적 페미니스트로 꼽힌다. 남성 작가들이 주도하던 문학계에서 자기만의 기법으로 내적으로 파고드는 작품을 썼다. 소설 <등대로>와 함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스트 에세이로 잘 알려져 있다.


<등대로>의 첫 부분에서 램지 부인과 램지 씨의 사고 방식은 대화를 통해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럼, 물론이지, 내일 날씨만 좋으면 말이야


-등대로, 램지 부인의 말 중에서-

 

하지만, 내일 날씨는 좋지 않을걸.

-등대로, 램지 씨의 말 중에서-

 

램지 부인은 아들에게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의 전망을 말해주는 반면, 램지 씨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면서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한다. 램지 부인은 '등대행'이 확정된 것처럼, 커다란 기쁨을 주는 반면 램지 씨는 자식들의 마음 속에 절망을 심는다. 편협하고 비관적인 사고로 비꼬듯이 말하는 그의 화법은 자식들에게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램지 씨는 항상 자신이 옳은 말만 한다고 생각하며, 아내를 비웃고 자식들에게는 가차없는 평가를 내린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램지 씨와 낙관적인 램지 부인이 가정을 이끌어나가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고 현대 한국의 가정에서도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인 소설인 <등대로>에는 대표적인 인물이 세 명 등장한다. 앞서 말했던 램지 부인과 램지 씨, 그리고 화가이자 주인공인 '릴리'까지. 램지 부인은 가부장적인 세계가 당연한 세대의 여성이며, 램지 씨는 가부장적인 사고에 도전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남자이다. 릴리는 램지 부인의 다음 세대이며, 가부장적인 가정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거부감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를 생각해주고자 하는 주변인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신을 고수한다. 이 구도는 어딘가 익숙하며 공감이 간다. 릴리는 마지막까지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아마 결혼이라는 것이 여자가 스스로 자아를 찾는 삶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듯 하다. 만약 릴리 또한 결혼을 했다면 이 소설은 그냥 가정 소설이나 로맨스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램지 씨가 가부장 제도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남성이라고 해서, 램지 부인이 그에 순응하는 여인이라고 해서 작가는 그들을 마냥 비난하지 않는다. 램지 부인이 남편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포용하는 마음, 램지 씨가 살아가는 세계 등을 바라보면서 릴리는 여성과 남성 각자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전에 읽었던 페미니스트 소설 <그레이스>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른 관점으로 표현된 작품이었다. 한 쪽의 입장에 서서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모두 포용하고 함께 보완해 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한 문장씩 곱씹어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잔잔하고도 격렬한 페미니스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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