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후작 에놀라 홈즈 시리즈 1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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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라진 후작-에놀라 홈즈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1887년 영국의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시리즈를 출판한 이후 여전히 홈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책은 물론이고 베네딕트 컴퍼베치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 세계인들을 홈즈 시리즈에 푹 빠지게 만든 영국 드라마 <셜록>,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뻔뻔스럽고 재치있는 연기를 보여준 영화 <셜록 홈즈> 등 갖가지 2차 창작물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스핀오프같은 버전의 다른 소설인가 싶었다. '에놀라'라는 어감을 봤을 때 여자의 이름이었고, 성이 홈즈인 것을 생각했을 때 홈즈의 누나 또는 여동생인가보다 했다. 알고 보니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낸시 스프링어라는 작가가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라는 인물을 만들어 여자 버전 홈즈의 기똥찬 추리 소설을 쓴 것이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보고 가장 반가웠던 점은 바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인물이 '소녀'라는 사실이었다. 이상하게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여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몇몇 소설이 떠오르긴 하지만 남자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유명 추리물 시리즈들을 생각하면 그 비율이 너무 적다. 아마 20세기까지 제한된 여성의 사회적 위치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셜록 홈즈>를 읽어 보거나 영드 <셜록> 등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셜록은 냉정한 논리주의자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오죽하면 영드에서 셜록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스스로를 두고 '나는 소시오패스야'라고 말할까. 그의 형으로 나오는 마이크로프트의 성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에놀라 홈즈'는 그들과 전혀 다른 인물이다. 물론 세세한 단서들을 캐치하고 추리력이 뛰어나며, 자기 주도적인 점은 그녀의 오빠들과 유사하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이나 마이크로프트와 전혀 다른 피가 흐르는 것처럼 사려 깊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캐치해 내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탐정은 냉철한 논리주의자여야 한다는 관념과 배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여성은 피해자나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다른 추리 소설과도 차별화된다. 고작 14살의 나이에 그녀는 꽉 막힌 꼰대같은 오빠들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독립하려고 하는 캐릭터이다.


<에놀라 홈즈>시리즈는 총 6권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사라진 후작>이다. 재미있게도 <에놀라 홈즈>는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된다. '에놀라 Enola'라는 그녀의 이름부터 소개되는데 거꾸로 읽으면 바로 alone의 뜻이다. 철저히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오빠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키려면 alone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그리고 에놀라의 어머니는 항상 어린 에놀라에게 '넌 혼자서도 매우 잘해나갈 거야'라고 말했다. 어느 날 다른 짐은 거의 챙기지도 않고 남자들의 복장을 하고 유령처럼 사라져버린 에놀라의 어머니! 결국 에놀라는 두 오빠들에게 전보를 부치고 그들은 허겁지겁 에놀라의 집에 방문한다. 홈즈는 시시 때때로 에놀라의 지능을 무시하고, 마이크로프트는 그녀에게 숨쉬기조차 힘든 코르셋을 입히고 숙녀 교육을 시키기 위해 강제적으로 여자 기숙학교에 집어 넣으려고 한다. 전형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그녀를 판단하는 오빠들, 에놀라는 왜 어머니가 오빠들을 피해 몸을 숨겼는지 그리고 왜 오빠들과 자주 보지 않았는지 바로 깨닫는다.


재미있는 것은 에놀라의 어머니가 그 동안 가짜 생활비 내역서를 장남인 마이크로프트에게 보내 많은 돈을 모았던 것이다. 너무 완벽한 내역서에 홈즈와 마이크로프트는 그 돈의 쓰임새를 상상도 못하고 지불했고, 어머니는 암호책을 통해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에놀라에게 알려준다.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보면 에놀라는 당시 시대적 기준으로 숙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코르셋으로 몸매관리도 전혀 하지 않은, 그야말로 야생마처럼 자란 말괄량이이다.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그리고 세상사람들의 고정관념은 그녀를 억누르고자 하는 '코르셋'과도 같은 존재이다. 홈즈와 동일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에놀라'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가의 의도가 대충 짐작된다. 억압된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홈즈와 마이크로프트와 다른 방식으로 실마리를 훌륭하게 풀어나가는 에놀라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뿌듯해진다. 오빠들보다 훨씬 멋진 에놀라가 혼자서 어려운 사건을 쓱쓱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 푹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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