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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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여우이야기-이솝우화보다 더 재미있는 여우 우화들


 


한국에는 호랑이와 자라를 놀리는 영악한 토끼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늑대와 인간을 속이는 지혜로운 여우가 있다고 한다. <여우 이야기>는 오랜 세월동안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읽어주는 유명한 우화라고 한다. 인간 사회를 동물들에 빗대 풍자했으며 유머와 함께 여우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여우를 지칭하는 이름 '르나르'였다. 게르만어 ragin(충고)dhk hart(강한)의 합성어에서 생긴 말로, 지혜로운 자 또는 유력한 충고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프랑스어 기초를 시작할까 생각하면서 어원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프롤로그이다. 프롤로그 전부를 여기에 옮겨놓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금단의 사과를 먹고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의 이야기였다. 신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 노인의 모습으로 둘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지팡이를 아담에게 주면서 이브는 절대 지팡이를 손 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브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대표하는 자로서 교활한 뱀의 속임수에 넘어가 금단의 사과를 먹자고 유혹한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여인이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아담이 물을 휘젓자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가축 양이 나오지만 이브가 물을 휘젓자(아담은 이브가 설득하자 금방 넘어간다.) 늑대가 나타나 양에게 달라들었다. 아담이 깜짝 놀라 지팡이를 빼앗아 바닷물을 휘젓자 개가 나오고 이 충직한 개는 늑대를 내쫓는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재미가 없지, 마지막으로 아담이 잠이 든 틈을 노려 이브가 지팡이를 휘젓자 여우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로도 아담은 암소, 거위, 닭 등과 같은 동물들을 나타나게 만들었는데 고양이는 이브가 꺼냈는지 아담이 꺼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내 생각엔, 왠지 이브가 고양이를 꺼냈을 것 같다.


이렇게 탄생한 여우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존재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하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우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든 것을 원하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늑대처럼-

 
   

 

한국의 토끼는 열심히 산중의 왕인 호랑이와 용왕의 충실한 신하 자라를 속였지만, 프랑스의 여우의 주 라이벌은 늑대와 인간들이다. 먹을 것이 없는지 프랑스의 여우는 대체로 굼주린 상태인데 때로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늑대를 등쳐먹기도 하고 인간을 속여서 먹을 것을 훔치기도 한다. 늑대 이장그랭이 바로 여우에게 항상 당하는 주인공이다. 톰과 제리에서 '톰'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 둘은 가끔 협력을 하기도 하는데 여우가 꿍꿍이가 있어서 늑대를 고의로 속였을 때이다. 가끔 진짜 협력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이상적인 상황은 항상 늑대의 과도한 욕심으로 마무리된다. 굶주린 채로 수도원의 작은 구멍을 통해 숨어들었다가 여우는 먹이를 조절해서 잘 빠져나오는데 절제 없이 잔뜩 먹은 늑대는 배가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인간들에게 두들겨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데도 비슷한 화소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우가 늑대를 속여 한 겨울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며 얼음 구멍으로 꼬리를 넣게 만드는 장면인데, 토끼가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를 혼내주는 방법과 몹시 유사하다. 늑대가 잡은 먹이를 홀랑 독차지하자 여우가 날아다니던 독수리를 시켜 먹이를 빼앗게 한 이야기도 전래동화에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다. 물론 문화가 다른만큼 차이점도 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수도원과 사제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우가 햄을 훔쳐 사제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하자 늑대가 사제가 되려고 시도하는 점이나, 수도원에 먹이를 훔치러 가서 술에 취한 늑대가 머리를 깎고 사제복을 훔쳐 입는 장면도 있다.


닭, 오리, 거위 등 소중한 가축들을 훔쳐가는 여우는 인간들의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여우를 경계하거나 또는 잡아서 가죽을 벗겨 팔아버리려고 하고 여우는 맛있는 것들을 잔뜩 저장해둔 채 먹이를 나눠주지 않으며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을 증오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의 편이 아니라 오히려 교활한 좀도둑인 여우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어찌나 인간들을 잘 속여넘기는지 감탄할 정도이다. 죽은 척을 해서 인간들의 마차에 올라타 먹이를 잔뜩 훔쳐먹는다든가 여우의 가죽을 노리는 농부를 속여 햄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우화가 많은 이유는 지상의 모든 자원들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사용하고 남용하는 인간들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오늘 밤에는 익숙한 이솝우화가 아니라 훨씬 재미있고 기발한 이야기가 잔뜩 있는, 프랑스의 <여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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